작년 11월4일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러시아까지 갔던 우리 탈북자 7명이 전부 북한에 강제송환됐다.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문…또 고문…그리고 공개사형,혹은 강제로 모은(동원한) 사람들에게 돌을 쥐게 해 ‘돌창’(돌던지기)을 놓게 할지도 모른다.

지난 96년 중국에 탈출했다가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던 이 모씨의 말을 들어보자. “그 때 우리는 처녀 2명을 포함해 8명이 혜산의 도(도) 보위부로 끌려갔습니다. 1월인데, 옷부터 발가벗기더군요. 그리고 밖에 내다가 두 줄로 마주 세워놓았습니다. 스물 여섯살 난 처녀는 애인도 함께 잡혀왔습니다. 둘다 함남도 어디에선가 교원을 하다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탈출했다가 잡혀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자가 보위원 발목에 매달려 빌었습니다. 제발 자기를 죽이고 처녀는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구둣발에 채여 피를 줄줄 흘리고 그래도 다시 매달리던 남자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보위원들은 자본주의 사상을 씻어낸다고 물까지 끼얹었습니다. ‘남조선 특무들한테서 무슨 임무를 받았는가. ’ 때리고 또 때리고 정신을 잃으면 물을 끼얹고…. 끝내는 견디지 못해 보지도 못한 남조선 사람들한테서 간첩임무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되면 총살입니다…. ” 이들 8명 가운데 4명은 총살됐고, 이씨는 혐의를 끝내 부인, 방면된 뒤 중국으로 탈출했다.

한국에 온 탈북자들 중에는 이런 죽음의 고비를 넘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또 직접 이런 사건을 취급하다가 온 전 국가보위부원도 있다. 단순히 김정일의 나라를 탈출했다는 것만으로 이 정도면 이번 7명의 운명은 짐작이 가지 않을까.

이들의 신상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으로 오려했다는 것까지 이미 러시아 TV 등을 통해 전부 공개됐다. 이들도 강제송환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감옥이라도 좋으니 돌려보내지만 말아달라’고 했다. 그야말로 ‘피의 절규’다. 이들 중에는 아직 푸른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한 열세살 어린이도 있다.

러시아 정부는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한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이들을 만나도록 했고, 한국행도 확인했다. 그러다 출국을 보류하고 중국에 넘겨주고는 국경수비대가 한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는데 참 이해되지 않는다. 그동안 적지 않게 좌절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때 세계 양대국의 하나였던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가 고작 그꼴인가.

이들을 넘겨받아 그대로 북한에 넘긴 중국의 태도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언제인가 우다웨이(무대위) 중국대사는 ‘중국에는 탈북자가 없다. 있다면 대부분 친척방문 등으로 정상적인 왕래를 하는 사람들 뿐이다’고 했다.

그때 우리 탈북자들은 실로 실망이 컸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러시아에서 넘겨받은 7명이 단순히 경제적 이유에서 밀입국했기 때문에 돌려보냈다고 했다. 우 대사에게 묻고 싶다. 대사는 이들이 북한에 송환되면 전부 ‘민족반역범’ ‘조국반역범’으로 극형당하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이게 단순히 경제적 이유문제인가.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 지난 날 일부에서는 탈북자 문제만은 상대국의 입장도 있고 하니 “조용한 외교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조용한 외교’ ‘물밑접촉’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이번 일은 그만 두고라도 지금 중국과 북한 국경에서는 탈북자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북한에 송환되고 있다. 도대체 옳은 일을 하자면서 죄지은 사람같이 뒤에서 쑥덕거림은 무엇인가. 큰 나라와의 관계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사대주의 생각에서는 아니었을까.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북한 당국에 있다. 또 그 체제에서 수십년씩이나 살면서도 소리 한번 내보지 못한 자신한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세상, 인권이 국경보다 중시돼야 한다는 세상에서 더이상 이런 일를 두고 볼 수는 없다. 탈북자들의 문제는 어느 한나라 한 체제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아 고달픈 넋들이 기댈 곳을 찾아주자.

/장해성 전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작가·96년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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