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이번 달 미국 방문은 한국 정부의 반대 입장이 완강한 데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까지 7일 ‘미·북관계 악화’를 경고하고 나섬에 따라 더욱 어렵게 꼬이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회견의 요지는 이번 황씨의 방미 초청은 미 의회의 일부 공화당 강경 보수세력이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추진하는 것이며 만약 조국을 배신한 인간쓰레기인 황씨가 미국에 간다면 악화되고 있는 조·미관계의 냉각과정만 더욱 가속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황씨의 이달 중 미국방문은 신변안전 보장 때문에 어렵다’는 원칙적 입장만 표시해온 우리 정부도 이번주부터 황씨를 초청한 미 의회 관계자들과 접촉, 정부 입장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를 그냥 두었다가 미 국무부가 의회편에 적극 가담할 경우, 자칫 외교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미 의회 내부에 대북 강경기조가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과 황씨 문제로 의회측과 마찰를 일으키는 것이 대북정책 공조 유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도 했음직 하다.

이에 대해 미 의회측은 ‘독립기념일 휴일’이 끝나는 이번주부터 황씨 방미를 위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의 초청장을 가져온 척 다운스 전 미 공화당 정책위원회 보좌관은 지난 6일, “(한국정부가 의회를 설득하려 하겠지만) 의회 의원들과 국무부도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미 의회측도 한국정부가 반대하면 황씨를 데려갈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난감해하고 있는 것 같다. 황씨 방미를 촉구하는 미 의회 차원의 ‘결정’을 내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황씨의 미국방문이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정부와 미 의회가 한동안 껄끄러운 관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미의회 관계자들은 현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의혹도 가질 수 있다. 반면 정부는 남북관계와 미북관계가 어느 정도 안정적 궤도에 들어선 연후에나 황씨의 비공개 미국 방문, 혹은 서울에서 미 의회 관계자들과 황씨의 면담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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