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일각의 통일헌법 공론화 주장은 느닷없고 현실성도 없다. 현재의 남북관계 진전상황으로 볼 때 통일헌법 논의는 시의성도 맞지 않고 국민적 공감대도 엷다. 오히려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폭발성은 국론분열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마저 있다.

그런데도 여당의 외곽연구소가 심포지엄이라는 이름을 빌려 아직은 「상아탑」에서나 논의되고 연구되어야 할 사항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내면서 『지금은 통일헌법 방안을 모색해야 할 중대한 시점』이라고 「선언」하고 있으니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의아하다.

오히려 지금은 통일헌법을 논의하기에 지극히 부적절한 시기라고 본다.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경제는 내리막길에 들어 섰으며, 정쟁은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다.

더구나 김대중 정부는 지금까지 대북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통일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훗날」일로 미루고 지금은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데 중점을 두어 왔다. 이 때문에 전임 김영삼 정부때 까지만 해도 자유민주주의를 골격으로 하는 공식적인 통일방안이 있었으나 이 정부 들어서는 공개적으로 천명된 통일방안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중대시점」운운하며 통일헌법 공론화를 유도하고, 그것에 담을 담론도 일반적인 국민정서와 배치되는 것을 제시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임 주제발표자는 『남북한의 통일과정에서 통일헌법을 논의할 때 「한국적 특수성」을 통찰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라며 『통일헌법의 구상이 우리 헌법을 중심으로 편협하게 진행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우리헌법을 중심으로 하면 「편협한 것」이니 북한이 지향하는 이념까지 포괄해 논의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물론 이것은 주제발표자 개인의견이고 여당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지만 여당 외곽연구소를 통해 제시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는 이러한 통일헌법 공론화가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재집권 시나리오의 일환인지, 김정일 답방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인지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점에서의 그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며 정치적 의도로 오해받을 소지가 많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통일」이라는 글자만 붙으면 마치 자기들이 전매특허나 맡은 양 이것 저것 손을 대려는 의식상태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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