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미국 정부의 공식 요청에 따라 한·미 정부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 문제에 대한 정식 협의를 시작한다고 해도 “이번엔 안된다”는 입장이다.

우선 황씨의 경우, 다른 탈북자와 달리 ‘특별 경호’를 받고 있는 신분이라 신변안전 보장 절차 협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주장이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황씨를 ‘지구 끝까지 따라가 위해하겠다’는 입장이라 황씨가 미국행 과정에서 자칫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이 정부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내세우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실제로는 황씨의 미국방문이 이제 막 재개되려는 남북대화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 미·북 관계개선 등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정부 당국자들도 말한다. 특히 황씨를 초청한 미국 의회 관계자들이 강경 보수 성향을 띠고 있어 이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황씨의 방미에 대한 미 의회의 강력한 요구를 정부가 계속 반대만 할 수도 없어 보인다. 때문에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다녀가거나 남북대화와 미북대화가 안정 궤도에 올라선 이후에, 그것도 ‘비공개 간담회’를 전제로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측이 미 의회 초청장을 가져온 척 다운스 전 미 공화당 정책위원회 보좌관에게 “오는 10월 이후나 내년 초 방문”을 제안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김 위원장 서울방문이 늦어진다거나 북한이 황씨의 미국행 시도에 대해 강력 반발할 경우 황씨는 현 정부 하에서는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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