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는 황장엽씨의 미국 의회초청건이 처음으로 보도되던 지난 4일이 외교통상부를 전담취재하게 된 첫날이었다. 그런데 그 첫날부터 매우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황씨 초청장을 두고 우리 정부가 내리는 기막힌 해석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겠다.

4일 아침 조선일보를 통해 미 의회의 황씨 초청사실이 보도되자, 외교부 출입기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담당 국장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담당 국장은 “의회의 공식초청이 아니라 민간차원의 초청”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오보가 전국으로 전송됐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국정원의 공식 보도자료가 외교부 기자실로 전달되었다. 국정원은 “이는 공식초청장이 아니라 헬름스 상원의원 등의 개인명의 초청장”이라고 했다. 기자들은 또다시 이들 초청장이 미 관련상임위의 ‘공문’이 아니라 의원들의 사신인 것으로 여겼다. 물론 그릇된 사실이었다.

오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마 후 외교부 담당국장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국정원으로부터 초청장의 사본을 받아 보았다며 ‘민간차원의 초청’이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취소했다. 대신 그는 이들 초청장이 의원들의 개인초청인지, 위원회 차원의 초청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마치 미국대통령의 이름으로 된 초청장을 보고서도, ‘미국대통령 개인의 초청장인지 미 정부의 초청장인지 확인해 봐야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초청장을 보면 한눈에 ‘공문’임을 알 수 있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안을 두고, 국가정보 총괄 기관과 수 십년 경험을 가진 외교관이 보여준 상식밖의 장면들이었다. ‘뭔가 부정해야 될 것 같다’는 심리가 빚어낸 과잉대응 같았다.
/허용범·정치부기자 yongbom-h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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