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의 미국행을 불허하는 당국의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 나라가 법치국가인 이상 국민의 자격을 가진 사람의 해외여행을 제한하려면 법에 따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조치는 황씨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황씨는 북한에서 귀순한 최고위급 인사로 국가의 신변안전 보호를 받고 있는 「특수신분」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황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제한해서도 안 된다. 황씨는 97년 4월 한국에 들어온 순간부터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주민등록까지 발급받았으며, 그에 따른 모든 권리와 자유를 부여받았다.

출입국 관리법이나 여권법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여권발급이나 출입국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황씨가 미국 의회에 가서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고 강연하는 것이 현 집권층의 이익에는 반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볼 수 없으며 또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한다고 볼 수도 없다.

황씨가 미국으로 가겠다고 한 이상 그가 미국으로 가는 데 법률적 하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신변안전 보장문제」를 들먹이며 그의 미국행을 막는 것은 월권이며 권한남용이다. 더구나 신변안전의 경우 초청한 미국측이 필요하다면 특별기를 보내고, 미국 내에서도 특수장소에 투숙시키는 등 만전을 기하겠다고 하는데도 정부가 계속 「신변안전」 운운을 내세우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만약 정부가 미국 정부의 신변안전보장을 굳이 요구하는 이유에 딴 뜻이 있다면 그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을 시도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그때 가서 검토해야지 처음부터 초청장을 가져온 미의회 관계자들의 황씨 면담마저 가로막고 나서는 것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황씨의 미국행을 막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황씨 등은 숙소를 옮겼는지 일체의 접촉이 두절된 상태다. 만일 이것이 일종의 억류상태로 국제사회에 비쳐진다면 이것은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망신이다.

황씨를 보내지 않겠다는 이유가 황씨의 의회증언에 따른 파장과 김정일 답방에 미칠 부정적 영향 때문이겠지만 미래의 예상 때문에 현존하는 법절차를 어길 수 없는 일이다. 법률을 어겨서까지 황씨의 미국행을 막는 것은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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