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위하여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에 간다. 분단 55년 만의 첫 대면이 될 양측 최고지도자의 만남은 21세기 한민족이 나아가야 할 초석을 놓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적 기대를 받고 있다.

그렇기에 회담의 성과를 위해 혹자는 어려운 문제는 뒤로 미루고 쉬운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정상회담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오히려 김 대통령은 가장 어렵고도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주’에 대한 해석을 공유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첫째, 북한체제의 최상의 목표는 김정일 체제유지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자주정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관철시키려고 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남측에서 온 손님에 대한 배려로 김 대통령에게 먼저 회담의 시작에 대한 의제를 제안하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르기까지 유일하게 합의를 본 바 있는 ‘자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7·4남북공동성명에서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조국통일 3대 원칙으로 합의한 바 있으며, 남북기본합의서는 이를 재확인했다. 그래서 남북대화의 기본정신을 이어받는 차원에서 자주정신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김정일 위원장이 먼저 ‘자주’문제를 언급할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김정일 체제유지라는 생존과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둘째, 서로가 주장하는 ‘자주’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북측은 ‘자주’를 통해 미군철수 주장을 되풀이해왔고 남측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에 회담 자체가 이어질 수 없었다.

김 대통령은 취임시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두 가지 기본원칙을 내세운 바 있다. 하나는 햇볕정책으로 남북간의 평화공존과 불신해소이며, 다른 하나는 통일과정, 그리고 통일 이후에도 한·미동맹 관계 및 주한 미군 주둔의 필요성이다.

남측이 미·일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북측이 중·러와 동맹관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상호간에 자주성이 문제될 이유가 없다. 북측이 미·일과 자주적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면 남측도 중·러와 자주적 외교를 펼쳐왔다. 남북문제는 역사적, 지정학적인 다면적 이해관계로 인해 상호동맹관계를 인정해야 하고, 이러한 역학관계 속에서 자주정신이 필요하고 주한 미군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밝히고 현재 미군철수주장이 불가함을 당당히 공표해야 한다.

셋째, 북한의 체제유지 목표를 위한 수단은 재원확보이다. 이를 위해 북측이 개방정책을 취한다면 이때 발생할 수 있는 체제붕괴를 우려하기 때문에 ‘자주’를 강조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북측은 재원확보를 위한 수단으로써 벼랑끝 외교에서부터 북·미 직접회담, 북·일 수교협상,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동원하고 있다. 남측은 김정일체제 붕괴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향후 번영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북한체제의 개혁 개방이 불가피함을 설득시키고, 북측의 경제난 타개를 위해 남북간의 자주적 경협이 가장 실현성이 있다는 점을 주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은 21세기 동북아질서가 새로이 형성되는 시점에서 향후 ‘남측의 이해’나 ‘북측의 이해’가 아닌 ‘한반도의 이해’를 지향하는 기본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상호간의 신뢰를 쌓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정신을 정면돌파해야 한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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