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황장엽씨의 미국행을 또 가로막고 나섰다. 황씨가 민주국가의 국민인 이상 그가 미국을 가고 안 가고는 그 자신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정도다. 그런데도 그동안 몇차례 황씨의 미국행을 반대해온 정부는 이번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헨리 하이드 의원과 전 상원외교위원장 제시 헬름즈 의원의 초청에 대해서도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도 신변안전 보장문제를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초청자들이 초청장을 통해 미국정부내 해당기관들과 협조해 확실한 신분보장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그것은 『개인 명의의 초청장이라서 안 된다』, 『미국정부의 신변안전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억지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라는 직책이 붙어서 초청하면 그것이 바로 「공식초청」이며 개인초청이 될 수가 없다. 또 의회관계 일로 초청되는 사람의 신분보장을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 말대로 『황씨의 방미문제는 특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초청자가 책임지겠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더구나 황씨 방미문제는 지난 3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상원외교위원장 헬름즈 의원의 요청에 따라 김 대통령이 사실상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비친 사항이다. 또 한때 황씨의 언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황씨의 신변안전은 외면한 채 그를 국정원내 안가로부터 쫓아내려고 했던 국정원이 황씨의 방미이야기만 나오면 전가의 보도처럼 「신변안전 보장」을 들고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정부 내에서 『황씨가 미국에 가더라도 간담회 참석은 괜찮지만 청문회는 안 된다』, 『미국을 방문해도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이후로 하는 것이 좋다』는 말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황씨의 방미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정부가 황씨의 미 의회 증언에 따른 파장을 우려하고 「김정일 답방」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답방에 너무 많은 것을 건 나머지 탈북자 문제를 비롯한 북한 인권문제엔 소극적이면서 황씨의 미국방문을 가로막는 것은 민주국가로서 명분에도 맞지 않고 국가 이미지에도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답방문제가 대북정책의 모든 것은 아니지 않은가? 황씨가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이상 모든 결정은 그에게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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