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장길수군 가족 7명이 싱가포르와 마닐라를 거쳐 30일 오후 한국땅을 밟았다. 97년 3월 두만강을 넘으면서 시작된 4년3개월여 여정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런 유례없는 ‘해피엔딩’을 우리는 뉴스로 볼 뿐 귀로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정부의 탈북자 대책의 획기적 변화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계에서 쏟아진 비상한 관심, 2008년 올림픽 유치라는 대사를 앞두고 있는 중국의 정치적 부담 등 대외환경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세계 주요국 정부와 민간단체, 언론들이 보내준 응원은 당사자인 우리를 부끄럽게 할 정도였다.

미국 국무부는 논평을 내 이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중국측에 전달했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AFP·BBC 등 언론들은 이를 계기로 중국 러시아 몽골 등지에 숨어지내는 탈북자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탈북자의 비극을 다룬 대대적인 특집을 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정부의 대응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탈북러시를 부담스러워 하고 때로 귀찮아 하는 태도를 이번에도 변함없이 노출했을 뿐이다. 중국 대사관의 직원은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보도됐다. 30일 오후 인천공항에는 7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었으나 당국은 기본적인 기자회견조차 가로막고 일가족을 ‘안가’로 데려가버렸다.

몇 년 전만 같아도 카퍼레이드나 범국민환영행사를 벌였음직한 이들의 사연을 왜 쉬쉬해야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긴 탈북자들이 입국할 때마다 있었던 공식 기자회견이 이 정부들어 사라진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됐다.

탈북자들이 제3국을 통해 ‘알아서’ 들어오면 얼마간의 정착지원금을 주고, 교과서적인 정착훈련을 시켜주는 것이 사선을 넘어온 동포들에게 해주는 거의 전부다. 그럴 때마다 정부당국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국익을 위해서’라는 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익이라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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