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족 보따리장수들이 북한으로 갖고 갈 짐을 쌓아놓고 중국 장백 해관(세관)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으로 요즘은 보기 어렵게 됐다.

90년대 초만 해도 혜산, 무산, 회령 등 북한의 국경도시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조선족장사꾼들이 장마당을 누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연변지역은 두 집 건너 한집씩 북한과 장사하는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북한으로부터 해삼, 명태, 오징어, 약재, 고급산나물, 구리(銅), 골동품 등을 가져 오고 싸구려 중국 물건들을 북한에 파는 장사였다. 북한과 거래했던 조선족 김희문(35)씨는 중국물건을 내다 팔면 보통 배 이상 많게는 3배 이상의 이득을 봤다고 한다. 요즘 중국에선 잘 입지 않는 싸구려 나일론제품이 북한에선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다. 중국산 담배, 술, 양말, 신발, 당과류 등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러나 최근 호황을 누렸던 조선족 보따리상들이 하나 둘 북한과의 거래를 정리하고 러시아나 남방지방으로 떠나고 있으며, 북한으로 들어가는 단둥, 도문, 장백 등의 세관은 썰렁해졌다. 이들이 북한과의 거래를 정리하게 된 것은 이제 더 이상 북한과 거래해서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자원이 고갈돼 물건도 턱없이 부족하고 중국물건을 살 수 있는 북한주민들의 구매력도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엔 개인장사꾼들을 뿌리뽑기 위해 북한당국이 대대적인 단속까지 벌이고 있다.

북한관리들의 부패도 문제다. 세관을 통과할 때 과도한 뇌물을 요구하거나 이런 저런 구실로 트집을 잡는데 진절머리 난다는 것이 장사꾼들의 이야기다. 작년에 구호물자를 싣고 북한을 방문했던 조선족 사업가 김민철(37. 가명)씨는 구호물자에도 뇌물을 요구하는 세관원들에 기분이 상한데다 자동차에 물건을 싣고 해당지역에 가는 도중에 군인들이 막무가내로 차에 올라 타 물건을 1/3이나 강탈해갔지만 속수무책이였다고 한다.

단둥에서 북한과 거래를 하고 있는 한 조선족은 북한 무역회사들은 돈이 없어 신용도가 낮지만 군소속의 무역회사는 대단한 자금력을 과시하고 있어 이 선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당국은 흐트러진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주민들의 개인장사를 없애고 있으며, 중국과의 무역도 회사간 거래로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으로 들어가는 조선족 장사꾼들이 줄어들수록 북한주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연길=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