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부터 중국 베이징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사무실에서 난민 지위 인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해 온 ‘길수 가족’ 7명이 이르면 다음주 말쯤에는 꿈에도 그리던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 4년여에 걸친 탈북 도피생활에 막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길수 가족들은 29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다시 제3국으로 이동,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언제 한국 오나=길수 가족은 필리핀이나 태국 등에서 1주일 가량 머문 후, 다음달 초쯤에는 한국에 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한국 입국을 전제로 출국허가를 받은 만큼 이들의 한국행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길수 가족 7인에 대해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줬다. 이들에게 우리 국민에 준하는 대우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 UNHCR 사무소 내 생활=3박4일에 걸친 길수 가족들의 베이징 농성 생활의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이 지난 26일 오전 UNHCR 사무실에 기습 진입한 후, 사무소 내 회의실과 중국 직원 사무실 등을 숙소로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UNHCR 사무소에 머무는 동안 고령인 길수군 외할아버지 정태준씨와 외할머니 김춘옥씨의 건강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주중 한국대사관은 밝혔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지 못할 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어서, 별도의 건강검진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길수 가족은 UNHCR의 대우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이들의 도피생활을 도와온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의 문국한 사무국장은 “농성 이틀째 되던 날 연락이 닿았는데, ‘저녁식사를 많이 갖다줘서 다 못먹었다’고 하는 등 안도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 제3국행 성사되기까지=길수 가족은 29일 이른 아침 UNHCR 사무실에서 공항으로 이동, 제3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중국 정부가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제3국 추방 후 한국 입국’이라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는 지난 99년 12월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7인의 탈북자 사건 때 중국 정부가 우리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논리로 중국측을 압박했다고 한다.

탈북자동지회 장인숙 이사는 “북송되지 않고 제3국행에 성공한 첫 케이스”라며 기뻐했다. 두달 전 길수 가족의 몽골행을 도왔던 ‘피난처’의 이호택 간사는 “지금도 중국에는 수많은 ‘길수 가족’이 있는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北京)=여시동기자 sdyeo@chosun.com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박민선기자 sunris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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