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 장길수군 가족이 사흘간 머문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 사무소가 있는 타위안 외교아파트 오피스텔 빌딩. 왼쪽에 UNHCR 간판이 보인다.
/북경=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3박4일만에 막을 내린 탈북자 장길수군 일가족 7명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北京) 사무소 체류와 싱가포르 출국 사태는 UNHCR의 역할과 한계를 다시 극명하게 드러냈다. 탈북주민 7명을 북한이 아닌 제3국으로 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주재국인 중국으로부터 ‘난민’ 자격을 받아내지는 못함으로써, 중국에 남아있는 수만명의 탈북자들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데는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UNHCR 베이징 사무소의 콜린 미첼(Colin Mitchell) 대표는 이번 길수군 가족 문제를 비교적 원만하게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베이징의 한 고위 외교관은 “미첼 대표는 탈북자 7명의 안전을 가장 우선시했으며 이들을 제3국에 보냄으로써 이 목표를 달성했다”면서 “그는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미첼 대표는 협상 상대이자 주재국인 중국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발언을 자제함으로써 중국을 배려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만약 미첼 대표가 ‘난민’ 지위 획득을 고집했더라면 사태 해결도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UNHCR의 한계도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길수 가족에 대한 ‘난민’ 판정권은 주재국인 중국에 있다 하더라도, UNHCR이 난민지위 획득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압박을 가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난민 지위의 인정 없이 제3국으로 추방한 결과는, 단지 UNHCR의 도움을 받았을 뿐, 탈북자 스스로 제3국으로 탈출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다른 수만명의 탈북자들에 대한 선례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원천적인 문제는 탈북자에 대한 난민지위 부여가 UNHCR의 관할사항이 아니라 주재국인 중국 정부의 결정사항이란 점이 지적된다. UNHCR이 길수 가족에 대해 아무리 ‘난민’이라고 주장해도 중국은 이미 북한과의 외교관계 및 한반도 문제 등을 고려,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난민은 없다”고 분명한 원칙을 정해둔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국제기구가 주재국의 주권 범위 내에서만 활동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다시 한번 노출시킨 셈이며, 국제기구의 위상강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 북경=지해범특파원 hbjee@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