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 계급피라미드의 아래쪽을 차지하는 재일 한국인을 영화 소재로 담아 주목받은 최양일 감독은 ‘개 달리다’(견, 주る·10일 개봉)에서 일본인 형사와 한국계 야쿠자, 중국인 창녀를 3각축으로 내세워 일본 사회 그늘을 까발리는 코미디를 매끄럽게 엮어냈다.

부패했지만 임무 수행엔 열심인 형사의 모순된 자기 인식, 감방 같은 중국인 밀항자 합숙소, 비밀 도박장, 기업형 야쿠자 사무실이 들어찬 신주쿠 뒷골목. 초고층 빌딩 아래 독버섯같이 돋아난 허름한 사무실과 아파트는 ‘1등 국가’ 일본의 현실. 한국말과 상해 사투리, 북경 표준어, 일본어가 뒤섞인 바벨탑의 도시에서, 나카야마 형사(기시타니 고로)는 중국계 창녀 모모(토가시 마코토)를 연인으로, 한국계 3류 야쿠자 수길(오스기 렌)을 끄나풀로 두고 있다.

모모에 대한 연정과 경찰과 야쿠자 사이 양다리 처신으로 위태위태한 삶을 영위해나가는 수길과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모모, 모모 남동생의 파멸은 일본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증언한다. 카메라는 기교보다 정공법을 택한다.

현장 급습 보도 프로그램처럼 흔들리는 화면은 차라리 초현실적이며, 신주쿠 뒷골목의 쫓고 쫓기는 추적 장면 속도감은 관객을 한층 불안하게 만든다. 네온 사인 휘황한 신주쿠 밤하늘로 튕겨 오르는 중국 청년 장면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개 달리다’는…

국제 영화제 수상 경력이 없는 일본 성인 영화로 국내 첫 개봉을 기록한다. 강간, 마약, 폭력 등이 코미디로 표현된 이 영화는 현재 일본 영화 2차 개방에 따른 수입 조건, 즉 해외영화제 수상 경력이나 연소자 관람가에 해당하지 않지만, 감독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예외적으로 수입 허가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는 “98년 일본 대중 문화 1차 개방 때, ‘한국인 참여도가 높은 영화는 개방에 포함시킨다’고 한 방침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수입사 동아수출공사는 지난해 9월 수입 심사에서 탈락한 뒤 문화관광부에 진정서를 냈고, 3월 수입 심의를 통과 이번에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최양일(51) 감독은 93년 재일교포 택시 기사를 주인공으로 일본의 ‘밑바닥’을 그린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로 주목받았다.

94년 북한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개 달리다’는 1년간 한국 유학을 하고 돌아가서 만든 첫 작품. 영화계에서는 “곧 드러날 일본 대중 문화와 영화 3차 개방 폭이 제한 없이 대폭 넓어질 것이라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박선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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