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의 난민 문제는 해묵은 숙제로 남아있다. 지난 20일 제1회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월 현재 전세계 난민은 2200여만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난민 사태를 살펴본다.

◆ 베트남 =사람들의 뇌리에 본격적으로 난민에 관한 이미지를 각인시켜 준 것은 베트남의 ‘보트 피플’이었다. 1975년 호치민(胡志明)이 이끄는 공산 월맹에 의해 베트남이 적화통일되자, 자유월남 치하에서 살던 베트남인들이 보트에 몸만 싣고 대거 탈출했다. 당시 난민 규모는 약 100만명에 이른다는 추정까지 나왔고, 홍콩에만 23만명이 유입됐다. 이들 중 대부분은 미국·캐나다·호주 등지에 새 둥지를 틀었고, 나머지는 동남아 국가들로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보트 피플 2000명을 수용하고 있던 홍콩의 난민수용소 ‘필라 포인트’가 작년 6월 문을 닫아 보트 피플 25년사가 막을 내렸다.

◆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1979년 대통령에 취임해 철권통치를 펴면서 반대파들이 많이 조국을 떠났으며, 시아파 이슬람교도들과 쿠르드족들이 상당수 포함된다. 특히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국제사회가 경제제재를 가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를 탈출했다. 현재까지 이라크를 떠난 난민들은 (UNHCR에 의하면) 50여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유럽과 중동 인근지역 등으로 분산됐다.

◆ 르완다 =1994년 르완다의 양대 종족인 ‘후투’와 ‘투치’ 사이의 내전은 무려 100만명의 사망자와 300만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엄청난 비극이었다. 특히 다수파인 후투족이 소수파인 투치족을 조직적으로 살육, 50만명의 민간인이 무자비하게 죽어갔다. 이웃나라들인 부룬디,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과거 자이르) 등에 난민수용소들이 국제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세워졌지만, 의료품 및 식량 부족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 코소보 =최근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코소보 난민들이었다. 유고연방 내 세르비아공화국의 자치주인 코소보의 주민들은 90%가 알바니아계. 그런데 세르비아계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대통령이 되고 ‘대세르비아’를 부르짖으며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탄압했다. 특히 1999년초 반군 소탕 명목하에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 청소’를 단행하면서 100만명에 달하는 코소보 주민들이 알바니아·마케도니아 등 이웃국가로 피란했다. 나토군이 99년 봄 유고 공습을 단행, 코소보를 강제 접수해 유엔 과도정부가 들어서면서 난민들은 대부분 코소보로 되돌아갔다.
/ 이용순기자 ysr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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