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江澤民)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탈출한 장길수군 가족 7명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北京) 사무소에 들어가 며칠째 ‘농성(籠城)’을 하고있습니다. 물론 중국 외교당국이 길수군 가족들의 의사를 직접 확인해서 주석께 보고할 것으로 짐작됩니다만, 장군 가족들의 희망은 “대한민국으로 보내달라”는 것이라고 들립니다.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은, 길수군 가족들이 희망하는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부탁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중국에 숨어사는 5만 정도의 이른바 ‘탈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싶어서입니다.
주석께서도 수많은 북한사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탈출해서 중국으로 건너온다는 사실은 알고계실 것입니다.

물론 중국 외교부 관리들의 말처럼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일정 기간 중국 동북지방에 머물다가 식량을 구하면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 가는지도’ 모릅니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국경긴장이 존재하지 않으며, ‘중조(中朝)국경’은 ‘평화롭고 열린 국경’임이 분명합니다.

굶주린 수많은 북한사람들이 중국공안에 체포되거나 조선에서 파견된 관리들에 붇들려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온갖 신체적 정신적 박해를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꾸준히 조선을 탈출해서 중국 동북지방으로 넘어오는 이유가 바로 중조국경이 ‘평화롭고 열린 국경’이기 때문입니다.

주석께서는 알고계십니까. 굶주린 북한의 ‘라오바이싱(老百姓)’에게는 중조(中朝) 우의를 상징하는 이 ‘평화롭고 열린 국경’이 고민의 근원이라는 것을. 이 국경을 닫으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중조간의 우의를 상징하기위해 ‘열려있는 국경’이 오히려 ‘유혹의 선(線)’이 되고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국 공안원들이 조선을 탈출한 사람들을 체포해 조선으로 넘겨주거나, 조선의 공안원들이 중국땅으로 건너와 탈북자들을 체포해 송환시키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한, 이들 탈북자들에게는 일가족이 패가망신(敗家亡身)할 줄 알면서도 건넜다가 결국 패가망신하고 마는 죽음의 선이 되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조간의 평화를 상징하는 열린 국경을 조선으로 송환되는 탈북자들은 ‘위선(僞善)’의 라인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주석께서는 4년전에 있었던 황장엽(黃長燁)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담당 비서의 베이징 한국영사부 귀순사건도 기억하고 계실겁니다. 주석께서는 황장엽 비서가 필리핀이라는 제3국을 거쳐 한국 귀순에 성공한 이후 다시는 탈북자들이 한국영사부에 뛰어드는 일이 벌어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유사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은데 대해 만족하고 계십니까. 충직한 중국공안원들의 근무자세에 대해서도 만족하고 계십니까.

황비서를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우리 정부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정부도 황 비서 사건이후 베이징 영사부를 통해 탈북자들이 귀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번 장길수 군 가족도 이벤트성으로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할 수 있도록 배려할 생각이십니까. 그런 다음 베이징의 UNHCR측에도 당부를 하고 중국 공안당국에도 엄격한 지시를 내려 다시는 UNHCR 베이징사무소를 통해 탈북자들이 한국이나 제3국으로 가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실 생각이십니까.

장주석, 사회주의 혁명은 왜 한 것입니까. 부(富)와 권력(權力)에서 소외된 민중들을 위해 한 것은 아닙니까. 혹시라도 이들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부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민중들이라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월경(越境)했다가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정치적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뻔한 사실을 인정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사실을 인정하고, 유엔이 요구하는 대로 이들을 난민(難民·Refugee)으로 규정, 국제법에 따라 처리되도록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문제를 계속 방치하다가 베이징이 올림픽개최지로 확정돼 올림픽이 열릴 경우 수많은 탈북자들이 그때에 맞추어 한국으로 가려는 러시가 일어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박승준 전문기자 sj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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