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길수군 가족과 친척의 망명사건과 관련해 27일 중국 베이징의 UNHCR를 방문하려던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입구에서 기자들을 발견하곤 서둘러 승용차로 돌아가고 있다.



“연길(延吉)에서 내려온 길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이번 사건에 앞장섰습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베이징(北京)에 가서 할 얘기를 다하고 죽자’고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26일 UNHCR 베이징 사무소에 진입해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장길수군 가족을 뒷바라지해 왔던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의 문국한(文國韓) 국장은 27일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 국장에 따르면 길수 가족 12명은 지난 20일까지도 가족회의를 통해 몽골행쪽으로 의견이 기울었으나, 옌볜(延邊)에 머물고 있던 길수 외할아버지(정태준씨)와 외할머니(김춘옥씨)가 합류하면서 ‘베이징 망명 요청행’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문 국장과 일본의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의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기자가 이들의 은신처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지원금도 끊기고 신분이 노출돼 언제 중국 공안에 붙잡힐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몽골행이냐 망명행이냐를 놓고 가족간에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

“길수 가족은 매일 가족회의를 열고 어디로 갈 것이냐를 토의했습니다. 처음에는 베이징 외교공관을 찾을 경우 입구에서 중국 공안에 잡힐 것을 우려해 몽골행쪽으로 방향이 기울었다가, 지난 4월 몽골행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몽골행도 자살길이다. 이러나 저러나 죽은 목숨인데 UN에 가서 떳떳하게 할 얘기를 다하고 죽자’고 설득하자 가족들 마음이 바뀌더군요.”

이렇게 해서 12명 가운데 7명이 UNHCR 진입에 가담했으나, 끝내 반대한 3명은 결국 몽골행을 택해 따로 길을 떠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2명은 중국 내에 계속 은신하고 있다고 문 국장은 전했다.

이번 행동결정 과정에서 올해 나이 17세인 길수군의 행동도 놀라웠다고 문 국장은 말했다. 그동안 북한 실상에 관한 그림으로 국제사회를 놀라게 한 길수군은 “가만 있으면 언젠가는 잡혀가고, 잡혀가면 정치범으로 총살당할 게 뻔하다”면서, “내 한 목숨을 바쳐 북한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 탈북자 문제가 세계에 부각이 된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각오가 돼 있다”며, 베이징행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한다.

랴오닝성 다롄에서 베이징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이들은 신분 노출을 우려, 2개조로 나뉘어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는 교통편을 이용, 13시간 만에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문 국장은 말했다.
/ 북경=지해범특파원 hbj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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