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하리 스스무 - 일본 시즈오카 현립대학 조교수

김 총비서는 중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흔히 일컬어진다. 그런 그가 대사관까지 애써 찾아가는, 외교상으로 이례적인 대응을 취했다. 체제 유지와 ‘강성대국(강성대국)’ 실현이라는 목적을 위해선 역시 최대 지원국인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중요하다는 정책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 총비서는 중국 방문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북한·중국 관계를 ‘특별한 2국간 관계’로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북한과의 관계를 ‘보통의 2국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자세를 보여왔다.

이는 김 총비서 방중 때 각각 발표된 양국의 발표문을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북한 측 발표문은 ‘전통적이고 불멸이며 피로 맺어진 조·중관계’와 ‘형제적 원조’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반면 중국 측 발표문엔 그런 표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 총비서는 자신의 노림수대로 ‘특별한 2국 관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중국으로선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이 시기에 김일성 주석 사후 첫 방문지로 김 총비서가 중국을 선택한 깊은 뜻을 이해했을 것이 틀림없다.

중국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북한에서 사전에 통보받았음에도 불구,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설혹 그런 불만이 있었더라도 이번 방중으로 완전히 해소했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유익한 원조를 앞으로 계속해 나갈 것이다.

김 총비서는 올해 조선노동당 창건55주년과 내년부터 시작되는 5개년 계획을 앞두고 중국의 지원이 현상 유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중국 지도부의 대북한 인식을 호전시키려 했던 김 총비서의 노력은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 이후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 의문은 이것이 과연 북한의 정책 변경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정치 수법에 불과한가 하는 점이다. 이번 방중을 통해 판단한다면 북한이 적극적인 대외관계 개선을 통해 체제 유지와 생존을 모색하려는 방향으로의 정책 변경을 단행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비공식 방중임에도 그 사실을 방문 직후 공표한 점, 장쩌민 주석 등 중국 지도자와 당당하게 면담하는 장면 등을 보면, 대외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자신의 투명도를 높이려는 북한의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평양 회담이 세계에 전달된다면 북한의 투명성은 한층 더 제고될 것이다.

/정리=박정훈기자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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