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 지사에서 농성중인 탈북자 「길수가족」 7명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난민지위를 부여받아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허락돼야 한다. 그들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난민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국제사회는 최근 들어 경제적 이유로 모국을 버린 사람도 난민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정치적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다. 이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면 정치범으로 몰려 모진 고문 끝에 처형되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며, 이들 중에는 북한에 강제송환되었다가 다시 탈북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와 달리 UNHCR가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UNHCR 본부 론 레드몽 수석대변인은 “이들이 망명을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며 “우리는 탈북자들이 강제송환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 현지의 UNHCR도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번 사안의 경우 난민인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당사국인 중국의 태도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99년 12월 탈북자 7명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해 국제사회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은 바 있는 중국은 이번에도 북한과 맺은 「의정서」에 따라 탈북자를 단순한 월경자로 간주해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 중국내 존재하는 수많은 탈북자 처리가 새로운 사회문제가 될 수 있고, 북한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UNHCR가 이들을 사실상 난민으로 인정하고 있고, 중국도 올림픽 개최 등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 하고 있는 만큼 과거의 고식적인 태도를 바꿔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이들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한다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단순한 긍정의 태도를 버리고 적극 나서서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들이 사실상 우리국민인데도 “중국정부는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한국행을 희망할 경우 받아들이겠다”는 외교부 당국자의 말은 너무 소극적이다. 정부는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받도록 모든 외교역량을 동원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 황장엽씨의 선례에 따라 「제3국 추방」 과정을 통해서라도 한국으로 오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