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나쁘든 제2의 황장엽사건입니다.”

한국대사관 한 관계자의 지적처럼 장길수군 가족의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망명 요청 사건은 1997년 2월 발생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요청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당사자들의 신분과 망명요청 경위, NGO 등 외부인들의 개입 부분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탈북자의 한국행 ‘정치적 망명 요청’이라는 점에서 같기 때문에 추후 사건 전개와 처리방향 등에서 유사성을 띨 가능성이 높다.

두 사건은 객관적인 사실에서는 완전히 별개의 사건이다. 먼저 황씨 일행과 길수 가족의 북한 내 지위가 너무 다르다. 황씨가 최고 권력층의 일원이었다면, 길수 가족은 화대군의 집단농장에서 일한 농민으로 알려져 있다.

지위의 차이는 망명 요청 과정에도 큰 차이를 낳았다. 황씨가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틈을 타 기습적으로 한국 총영사관으로 뛰어든 것과 달리, 길수 가족은 99년 1월 북한을 탈출해 중국 동북지역에서 2년 이상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은신과 탈출을 모색해오다 마지막 수단으로 집단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UNHCR사무실로 뛰어들었다.

또 황씨와 김덕홍씨가 누구의 지원도 없이 독자적으로 총영사관을 찾은 반면, 길수 가족은 한국과 일본 NGO의 지원을 받아 도피와 망명길을 모색할 수 있었다.

망명을 요청한 기관도 황씨 사건의 경우 한국 총영사관이어서 관련국이 중국·한국·북한 3국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UNHCR란 유엔 기구가 개입돼 관련 당사자가 4개로 늘어났다. 따라서 향후 사태 해결을 위한 협상 과정도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은 상당한 유사성을 띠고 있다. 황씨나 길수 가족은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질 경우 정치적 박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외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했다.

북한의 고위 지도층 출신인 황씨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더라면 극형에 처해졌을 것이 분명하고, 길수 가족 역시 그동안 북한 실상을 알리는 그림 등으로 북한측에 크게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라 심각한 정치적 박해가 예상된다.

자신들의 운명이 주재국 정부(중국)에 크게 달려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중국은 황씨를 끝까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신분으로 제3국(필리핀)으로 보냈다.

길수 가족에 대해서도 UNHCR와 중국 등이 협상을 벌이겠지만, 중국은 이들을 끝까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불법 월경자’만 있을 뿐 난민은 없다는 것이 중국의 기본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길수 가족 역시 ‘제3국으로의 추방’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황장엽 사건이 그랬듯이 길수 가족 사건 역시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오는 7월 13일 베이징의 올림픽 개최지 선정문제가 남아 있어 중국은 이 시기를 넘겨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말했다.
/북경=지해범특파원 hbj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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