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 황재일 간사가 27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사무실에서 장길수군이 그린 그림과 중국지도 등을 보여주며 탈출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길수가족 구명운동 본부’는 3명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미니 단체다.

고려대 북한학과의 김동규(63) 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고, 중국과 서울을 오가며 탈북 ‘길수 가족’을 직접 접촉해 온 문국한(49) 사무국장, 황재일(28) 간사 등 3명이다.

이 단체는 길수 가족 7명이 지난 26일부터 중국 베이징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사무실에서 ‘난민’ 지위 인정을 요구하면서 농성에 돌입해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있지만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는 초라한 신세다.

이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99년 8월 탈북자 및 북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교수들의 모임인 ‘평화교수협의회’에 문씨가 김 교수를 찾아오면서다.

선교활동 및 무역업무 등으로 중국을 드나들던 문씨는 김 교수에게 “중국에서 우연히 길수라는 아이를 만났는데 그대로 두면 죽는다.

길수를 데려오기 위한 운동본부를 만들겠다”며 도움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명색이 북한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그곳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생면부지인 문씨의 부탁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탈북 길수 가족을 돕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돈으로는 16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먹여 살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후원자를 찾는 잡지를 발간해 보기도 하고, 길수가 그린 북한 실상을 담은 그림집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 책을 내기도 했지만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동료 고려대 교수 등 100여명이 후원자로 나섰지만 잦은 중국 출장비를 대기도 벅찼다는 것이다.

길수 가족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후원자들의 도움마저 끊기게 되자 문 국장은 8000여 만원의 빚을 얻어가면서 운동본부를 꾸려왔다고 한다. 길수 가족이 베이징 한복판에서 농성에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경제적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우리 모임의 목적은 오직 하나, 길수 가족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라며 “길수 가족을 통해 북한의 비참한 인권 실상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선기자 sunris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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