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오는 25일부터 2003년 11월까지 3년 반을 전국적으로 6·25를 기념하는 기간으로 정했다. 미 의회는 이같은 사업을 추진하도록 국방부 산하에 ‘한국전 50주년 기념 위원회’를 설치토록 했다. 국방부 인근 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넬스 러닝 위원장은 클린턴 대통령이 참석하는 25일 행사를 준비하느라 3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공군 소장으로 전역한 그는 1981~82, 85~86, 92~95년 등 세 차례나 한국에서 근무한 ‘한국통’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6·25 50주년 기념 깃발이 꽂혀 있었다.

―미국에서 6·25는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 지금 와서 6·25를 재조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6·25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인식은 낮은 편이다. 책방에서 6·25에 관한 책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2차 대전과 베트남전에 관한 책들은 많은데, 6·25에 관한 책은 단 한권 뿐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발발했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에 묻혀버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120만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살아있다. 비록 늦었지만 그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헌신과 희생을 기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제 6·25는 더 이상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

―6·25가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6·25는 동서 냉전이 일으킨 첫 번째 전쟁이었다. 어린 시절 고향 몬태나에서 매일 6·25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미군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6·25는 공산주의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연합, 자유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 ”

―앞으로 3년 반동안 어떤 프로그램으로 6·25를 기릴 계획인가.

“우선 120만 한국전 참전자들에게 기념 옷핀과 한국정부가 보내온 기념 메달을 주는 것이 급선무다. 참전자들의 평균 나이가 75세로, 갈수록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전자 대부분이 시골에 살기 때문에 이들을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매년 3번 이상 한국전 기념행사를 갖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각종 모임에 팸플릿과 테이프, 포스터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각급 학교에서 6·25에 관한 역사 교육을 하도록 권하고, 자료를 보내주는 것도 업무다. ”

―일반 국민들의 호응은 어떤가.

“매우 좋다. 벌써 전국적으로 2000개 이상의 각종 모임에서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연락해왔다. 기업 참여 프로그램도 있다. 예컨대, 야구위원회에서는 시합 전 6·25 기념 깃발을 게양하고 6·25 기념 점보트론을 가동하는 등 기념행사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얼마전 시카고에서 열린 전몰 장병 기념일 행사 때 한국전 참전자들이 모여 행진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런 행사가 자주 열려야 한다. ”

―노근리 사건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AP가 보도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양국 정부가 조사하고 있는 만큼,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측 자문위원단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 때 동석했던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 조사가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의사당에서 열린 전몰 장병 기념 콘서트에 참석했는데, 행사 도중 노근리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된 것은 참혹한 일이라는 멘트가 있었다. ”

―곧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국에서 근무했던 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감회를 느끼는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있을 때 김영삼(김영삼) 전 대통령도 김일성과 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무산된 일이 있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이 이번에 북한의 문호를 연 만큼,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을 김정일에게 잘 전달해서 성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지나치게 낙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기념사업과 관련, 한국 정부나 한국 국민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4월 한국을 방문, 백선엽(백선엽) 장군 등 한국측 기념사업 담당자들과 만났다. 협조 체제가 훌륭하게 구축돼 있고, 앞으로 3년 반동안 서로 협력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물론 한국 국민들의 성원이 있기를 바란다. ”

―이 일을 하면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

“지금 내 호주머니 안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한 상사가 보낸 편지가 있다. 그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영하 40도를 밑돌았고, 트럭도 움직이지 못했다. 동료들의 죽음과 고통을 이겨내고 귀국했을 때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이제서야 누군가 우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기쁘다’고 적었다. 직원들이 이런 편지나 이메일을 가져올 때 ‘내가 할 일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 /워싱턴=주용중기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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