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7명이 26일 오전 10시(한국시각 오전11시)께 베이징(北京)시 차오양(朝陽)구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전격적으로 들어감으로써 베이징 주재 외교계가 비상이 걸렸다.

탈북 주민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것을 우려해 베이징 소재 UNHCR을 찾아가 난민 지위 인정과 망명을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이곳은 치외법권이 작용하는 지역이어서 중국의 공안과 외교부 관리들이 간섭을 할 수 없는 안전한 곳이라 난민 7명의 작전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이들의 도착은 일본 기자들이 가장 먼저 알았다. 일본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의 프리 랜서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기자가 일본 기자들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교도(共同)통신은 귀띔을 받고 10시5분께 도착했으며 탈북 주민 7명의 대표가 외신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해 한국 특파원들을 비롯한 외신사들은 대체로 11시 전후 도착했다.

북한 주민 7명은 3명과 4명으로 나누어 도착했으며 이곳은 평소에 경비가 삼엄하지 않기때문에 쉽게 들어갈 수가 있었다. 사태가 발생한 이날 하루 종일 중국의 공안 및 외교부 관리들은 눈에 띄지 않았으며 오후 6시가 넘어서는 사복 공안인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확인할 수는 없었다.

UNHCR이 든 건물은 공식 명칭이 '外交人員오피스빌딩'으로 UNHCR은 2층 1-2-1호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빌딩은 사무실과 숙소를 함께 갖추고 있다. 이 빌딩에는 대사관이 아닌 앙골라, 모잠비크 대표부와 국제기구 등이 입주해 있으며 숙소가 있어 밤이 되자 안전과 정숙을 위해 나가줄 것을 관계자들이 요청했다.

빌딩 근무요원들은 외신기자들이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오전 중 처음에는 막았으나 대부분 제지하지 않았으며 대신 사무실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중국인 근무요원이 정중한 자세로 요청했다.

이에 따라 외신기자들은 대부분 1층 복도에서 기다리며 사태를 수소문 하기에 바빴다. 북한 주민 7명이 도착한 후 이들의 사진과 가계도가 일시 나돌았으며 기자들은 취재하기에 바빴다.

이 북한인들과 동행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지로 기자는 2층으로 진입했다가 30분만에 밀려나와 기자들에게 사태를 설명했다. 곧 이어 시작된 콜린 미첼 중국주재 UNHCR 대표와 북한 주민 간의 대화는 통역 때문에 엄청난 어려움을 격었으며 26일 밤 늦게까지 통역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사실 확인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중국 외교부와 북한대사관은 사태 해결에 시간이 걸릴 것임을 예상한듯 UNHCR과 먼저 접촉을 취하지 않았다. 이들의 이러한 자세는 우선 사태를 파악한 다음에야 입장을 취할 수 있기 때문으로 관측되고 있다.

장치웨(章啓月)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중국과 북한간에는 난민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이번 사태는 더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주재 한국대사관은 중국 외교부에 '신중히 처리해줄 것을 요망한다'고 요청했으나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는 사안이어서 외교 채널은 차분하게 돌아가는 느낌을 주고있다. 어느 일방이 초조하게 나선다고 한국, 중국, 북한, 유엔이 모두 걸린 이번 민감한 문제가 금방 해결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를 대표한 문국한씨도 이들과 함게 UNHCR로 들어가 돕고 있다. 이들은 한국으로 가지 않으면 죽을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고 문씨는 말했다. 또 일본에서 이들을 돕고 있는 RENK측도 오사카(大阪)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의 난민 지위 인정과 망명을 호소했다.

서울에서는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대표 김동규)가 `길수 일가족의 난민 인정과 망명을 촉구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장길수 군 일가족 모두는 유엔으로부터 국제법상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자유로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보장받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UNHCR 중국 사무소의 미첼 대표는 탈북 주민 7명의 신변을 처리하는데는 시간이 걸리며 언제 해결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미첼 대표는 '이들은 북한 송환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해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알 수가 없으며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첼 대표는 UNHCR이 이들과 상담을 진행중이나 통역 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사실 파악이 늦어지고 있으며 중국 등과도 접촉해야 하기때문에 '사태가 언제 해결될 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미첼 대표는 이들이 건강한 상태이지만 추방당할까 걱정을 하고있다면서 북한으로 돌아가면 정말로 박해를 받을 위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UNHCR 중국 사무소가 대사관 처럼 외교적 보호를 받고있다고 지적했다.유엔의 승인 없이는 중국 경찰이 사무소내로 들어올 수 없다는 얘기다.

미첼 대표는 유엔이 이들 7명이 사무소에서 적어도 하룻밤을 머물도록 허용했다고 설명하고 이들의 신변 처리와 관련해 중국과 한국 당국과 협상중이라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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