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송환 위험 무릅쓰고 목숨건 '마지막 선택'

길수군 가족이 ‘행동’을 결심한 것은 한국으로 가기 위한 모든 방법이 막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내인 등을 통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北京) 사무소에 여러 차례 한국망명 의사를 전달했지만 ‘관련국들과 상의해야 한다’는 미온적인 반응만을 접했을 뿐이다. 여기다 은신 자금이 바닥나 더 이상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하며 은신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부 자선기금도 다 쓴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 출판한 길수군의 화보집이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의 상황변화로 별다른 수입을 올리지 못한 것도 자금 사정을 어렵게 했다.

길수군 가족이 본인들 표현처럼 목숨을 걸고 ‘거사’를 단행하게 된 또 다른 동기는 중국 정부가 섣불리 공권력을 동원하지 못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7월 13일, 2008년 올림픽 개최도시 선정을 앞둔 상황에서 베이징의 올림픽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국 정부가 국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믿음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다.

길수군 가족들은 당초 UNHCR 점거·농성 계획에 대해 위험부담이 크다며 거부했으나 한국행을 이룰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생각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UNHCR 진입과정에서 중국 공안에게 제지당해 신분이 노출될 경우 북한으로 송환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행동을 시작했다.

이들을 안내한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의 문국한 사무국장은 “길수군 가족들의 한국행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UNHCR 사무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길수군 가족들이 UNHCR 사무실에 들어간 일차적 목적은 자신들의 한국행을 이루는 것이지만, 나아가 중국 내 탈북자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 탈북자들이 공식적으로 난민 지위를 받도록 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이들은 일단 UNHCR 사무소에 무사히 진입한 것을 1단계 성공으로 여기고 있다.
/ 북경=여시동 특파원 sdy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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