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그림으로 국제사회에 폭로하며 중국 내에 은신해 왔던 탈북 소년 장길수(17·가명)군의 가족과 친척 7명이 26일 오전 10시10분쯤(이하 현지시각) 베이징(北京) 시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 사무소에 진입, 자신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한국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 길수군 가족이 UNHCR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촬영한 가족사진. 왼쪽부터 장길수, 외할머니 김춘옥, 외할아버지 정태준, 이모 정선희, 이종사촌 이화영, 이모부 이동학, 이종사촌 이민철.


길수군 가족은 최근까지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連)에 은신해있다가 22일 밤 베이징으로 이동, 이날 UNHCR 사무소에 진입했다. UNHCR 사무소에 들어간 사람은 길수군을 비롯, 할아버지 정태준(69), 할머니 김춘옥(68), 이모 김선희(49), 이모부 이동학(49), 이종사촌 이화영(여·17)·이민철(15) 등이다. 이들은 한국 NGO인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의 문국한 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아 3명과 4명씩 두 차례에 나누어 UNHCR 사무실에 진입했으며 진입 과정에서 별다른 제지는 받지 않았다.

베이징 쿤룬 호텔 근처의 외교인원 탑원판공루(外交人員 塔園辦公樓) 빌딩 2층에 위치한 UNHCR 베이징 사무소는 이들이 진입한 뒤 출입이 통제됐다. 길수군 가족을 안내한 문 사무국장은 전화통화에서 “오전에 콜린 미첼(Colin G Michell) UNHCR 베이징 사무소 대표를 만나 요구사항을 전달했으며, 7명 모두 한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하는 망명신청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길수군 가족들은 자신들의 한국행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자살을 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미첼 UNHCR 대표는 “이번 사안이 중국 및 여러나라와 협의를 해야 할 사안인 만큼, 극단적인 행동을 삼가하고 기다려 달라”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문 국장은 전했다.

문 국장은 길수군 가족을 UNHCR 사무실에 남겨둔 채 오후 1시쯤 사무실을 나왔다. “길수 가족은 한국행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UNHCR 사무소에서 한발짝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문 국장은 말했다.

앞서 일본의 프리랜서로 길수군 가족과 미리부터 동행해 왔던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의 이시마루지로(石丸次郞·39) 기자도 길수군 가족과 함께 UNHCR 사무소에 들어갔으나 약 30분 뒤 UNHCR 측의 요구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번 사태는 아직까지 탈북자에 대해 난민 지위를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중국 정부가 2008년 올림픽을 베이징에 유치하기 위해 국제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해 국제적 이목을 끌고 있으며, 향후 처리 방향과 관련, 북한 등 당사국들과 적지않은 외교적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 북경=여시동특파원 sdy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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