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3박4일간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민주당 당직자 및 보도진은 매우 황당한 경험을 했다. 선상(선상)교육을 시작으로 적어도 10번 가량 “절대 정치논쟁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현대 직원들의 경고와 달리, 북측 안내원들이 앞장서 ‘정치 논쟁’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6개월 전 금강산을 관광했다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화”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금강산에 근무하는 북측 안내원들은 남쪽 사정에 훤한 듯, 대개 대화를 유도해왔다. “김종필(김종필)씨가 이번 선거 때 아주 망신 당했죠?” “박태준(박태준) 국무총리는 숨겨놓은 재산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386세대 의원들이 5·18사변(광주민주화운동) 전날 잔뜩 술을 퍼먹다가 걸렸다죠?”….

이런 의례적인 ‘서론’에 이어 그들은 한결같이 12일로 예정된 ‘북·남(북남)’ 정상회담에 대한 민주당 당직자들과 우리 보도진의 견해를 물어왔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2일 휴게소에 들러보니 7군데에서 우리 당직자들과 북한 측 안내원들이 정치토론을 벌이고 있더라”며 “내게도 ‘민주당의 정책을 대변해보라’고 해 난처했다”고 말했다. 기자도 북한 측 안내원들의 열성적인 정치토론의 표적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2일 만물상 등반을 끝내고 내려오는 기자에게 한 안내원은 “아! 기자 선생이시구먼”이라며 접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마침내 “문 선생은 우리 장군님(김정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집요한 추궁에도 기자가 “말할 수 없다”고 버티자 그는 실망했는지 “문 선생은 덩치가 커서 호탕한 줄 알았더니 통일에 대한 견해조차 없는, 속이 꼬부라진 반통일적 인물 아닌가”라며 가버렸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이런 경험담을 나누던 중 한 의원은 “나도 똑같은 일을 당했다”며 “꽃피는 금강산에선 지금 정보 보고가 한창”이라는 촌평(촌평)을 남겼다.

/문갑식 정치부기자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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