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 미디어에 등장한 한 노(노)재벌총수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거동이 불편해 아들과 직원들의 부축을 받고 뒤뚱거리며 사옥을 나서는 정주영(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모습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의 ‘왕회장’의 권위도, 그리고 한때 진취적 기업활동과 파격적인 언행으로 한국사회를 주름잡던 호방함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가 80을 훨씬 넘긴 나이에 무엇이 아쉽고 부족해 그런 남보기 딱한 모습으로 아직도 현대의 ‘왕’노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현대의 경영이 어떻고 자구노력이 어떠며 유동성위기가 왜 왔는지를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현대의 현주소와 왕회장의 딱한 모습, 아들들의 싸움을 보면서 사람으로서 들 때와 날 때를 아는 지혜, 남 앞에 나설 때와 사라질 때를 터득하는 슬기와 돈버는 재주는 별개의 것이구나 하는 소회를 느낄 뿐이다. 그리고 일가(일가)를 거느렸으되 일가를 훌륭하게 이루는 데는 결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차라리 소박한 소시민임을 위안삼는 사람 또한 적지 않게 있으리라 믿는다.

현대는 한국경제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 회장의 성공사례는 기업인 또는 어느 분야에서든 입신(입신)하려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귀감이었다. 현대의 성장과정은 여러 기업의 본보기였으며, 정 회장의 일거수 일투족과 숱한 발언들은 수없이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마침내는 ‘현대가 잘돼야 한국이 잘되는’ 것으로 일반에게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현대와 정씨 일가가 왜 이제와서 침체에 빠졌으며 어떻게 해서 한국사람들을 경제적 불안으로 몰고 있는 것일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많은 대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돈이 돌지 않아서’라는 대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침체는 반드시 돈 때문이 아니라는 또다른 관점도 있다. 현대가 정 회장의 무모함으로 돈을 벌었다면 이제 그 무모함으로 인해 말년의 곤경에 처해있다는 관점이다.

정 회장의 첫 번째 무모함은 ‘대통령에의 꿈’이었다. 돈을 벌 만큼 번 그는 ‘나라고 대통령 하지 말라는 법 있나’라는 생각에 빠졌다. 그가 보기에 ‘별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하는 판에 그런 생각이 들법도 했을 것이다. 그는 선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도 실패했다. 아마도 그로서는 최초의 커다란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의 두 번째 무모함은 북한 진출이다. 북한 진출 자체가 무모하다는 것이 아니다. ‘기업인으로서의 사업’이 아니라 사회적 원로로서 고향과 북한에 무엇인가 기여하겠다는 감성에 몰입하면서 현대라는 기업이 중심축을 일탈하게 됐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마당에서 정 회장은 ‘통일운동가’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기업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 회장의 무모함은 그가 일군 기업들을 형제, 특히 아들들에게 배분하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과 회사들을 자기 장중의 소유물로 생각했는지 ‘너는 이것 갖고 너는 저것 내놓고’하는 식의 분배(?)과정에서 한국의 대기업을 남보기에 우스개로 만들었고, 더 나아가 국민들을 우롱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는 기업을 정리하는 일들을 너무 안이하게, 너무 소홀하게, 너무 늦게 다룬 것이다. 그것이 그의 또 하나의 무모함이며 안이함이며 판단의 흐릿함이다.

정 회장은 이제 많이 늙었다. 아니 늙어보였다. 그만큼 현대를 위해, 한국경제를 위해 동분서주했으면 이제 쉴 때도 됐다. 아니 훨씬 넘었다. 무엇 때문에 결코 유쾌하지 않은 거동과 일그러진 표정을 국민들 앞에 노출시키며 자식들의 싸움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어느 영화배우는 젊었을 때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나이 들어 여생을 절대로 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 마감했다. 자신의 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죽을 때까지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은 유명한 기업인도 있다. 정주영씨의 거동과 모습에서 오늘날 현대의 ‘나이’와 건강상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 회장과 국민을 위해 모두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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