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에 대해 ‘평가’한 것은 북한의 변화 가능성과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김정일의 이번 방중이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을 분석해보는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편집자

▲박두복=북한과 중국은 중국의 개방노선 채택과 90년대초 한·중 수교 이래 멀어지기 시작한 양국간 비정상적 관계의 정상화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그동안 북한은 중국이 한반도 정책과 관련하여 북한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스스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적극 나선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한 한반도 상황의 급진전 가능성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하루 속히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중국도 한반도에서의 역할 확대를 위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했다. 세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위’로 요약되며, 이 때문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중요해진다.

▲한홍석=북한으로서는 남북정상회담이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는데, 여기에 임하는 입장을 중국에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중국이 김정일의 방문을 받아들인 것은, 대미(대미) 정책을 북한과 함께 조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만(대만) 문제가, 미국엔 북한 문제가 골치 아프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늘 대만 카드를 사용해 왔다. 중국으로서도 미국에 대해 ‘우리도 북한 카드를 갖고 있으니, 대만 문제에 섣불리 나서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이다.

▲하영선=김정일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지만, 이후 대대적으로 ‘공식’ 보도를 하고 있다. 북한 보도기관이 밝힌 북·중 정상회담 의제는 ①사회주의 건설의 성과와 경험 통보 ②전통적인 조·중 친선관계의 공고한 발전 ③국제관계를 포함한 상호 관심사 등이었으며, 이견(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비공식 방문을 공식 보도한 것은 북·중 모두에게 성과가 있었다는 뜻이다. 의제 셋중 특히 ③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남북 정상회담도 여기에 포함된다. 남북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은 김정일이 발표한 ‘97년 8·3 문건’(‘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과 ‘98년 4·18문건’(‘민족대단결 5대 방침’)에서 출발한다. 김정일은 ‘조국통일’이라는 김일성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국제적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정일의 방중은 남북 정상회담에 앞선 국제적 지지와 연대 확보를 위한 노력일 것이다.

▲박=비밀 방문이었지만 즉각 공식 발표한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북한의 노선 전환과 관련된 분석도 가능하다. 북한은 작년 김영남(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불과 며칠 앞두고, ‘로동신문’ 등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전면 부정했다. 중국이 김정일 방문을 즉각 발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의미다.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사회주의 시장경제 정책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태도가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도록 하려는 중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김정일의 방중은 처음부터 ‘비공식 방문후 공식 보도’라는 ‘반(반)공식 방문’으로 계획됐다고 본다. 김정일의 방중은 양국 관계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제3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북한과 중국이 서로 옛날의 관계를 회복했음을 밖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다. 발표를 보면 이번 김정일이 만난 중국 관리들 중에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도 있는데, 사회주의의 진짜 외교는 공산당 내부에서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옛날 채널의 회복을 의미하고, 그것을 대외적으로 알린 것이다.

▲박=그러나 중·북 관계가 한·중 수교 이전의 특수 관계로 완전히 회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협력적 동반자 관계라는 현실적 이해(이해) 위에서, 다시 말해 과거 북한과의 특수관계는 탈피한 입장에서 북한과의 정상적 관계를 회복한 것이며, 북한도 중국의 이같은 신정책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김정일의 방중 결과, 지금 북한이 ‘우리(북한)식 사회주의’에서 ‘중국식 사회주의’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북한 보도기관들은 앞서 말한 의제의 역순으로 비중을 두면서 조심스러운 단어들을 선택하여 ‘양쪽의 사회주의가 다 성과가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북한이 중국식 사회주의로 가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는 조심스럽다.

▲박=김정일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평가’한 발언은 주목해야 한다. 이는 북한 내에서 곧 공식화될 것이다. 1976년 모택동(모택동) 사망 후 화국봉(화국봉)이 개혁으로 못간 이유는 권력체제의 취약성 때문이었지만, 지금 북한에서 김정일 체제는 공고하므로 노선 변화가 가능하다. 다만 중국식 노선을 답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점(점)에서 선(선), 즉 벨트로 점진적 개혁을 추진했지만, 북한은 종심(종심)이 얕은 등 여건이 다르다.

▲한=그동안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북한 붕괴론이 국제사회에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구걸한다는 인상을 우려한 것이다. 이번 방중은, 그런 위기를 극복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도 그렇게 평가한 것 같다. 김정일이 방문한 중관촌(중관촌)의 ‘롄샹(련상)’기업은 가장 성공한 민간기업이다. 이곳 방문은 ‘쇼’일 수도 있다. 김정일로서는 중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나(김정일)도 이만큼 현대적인 컴퓨터 공장, 인터넷 개방에 관심이 있다. 나를 폐쇄적으로 보지 말라. 우리도 이 정도 개혁·개방은 하고 싶으면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앞으로 급변할 것 같지는 않다. 변화는 현재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식과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하=장기적으로 북한이 변화할 것이냐와, 단기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어떻게 투영될 것이냐를 살펴보자. 세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①여전히 김일성 유훈 사고(사고)의 전통 위에서 나가느냐, ②과도기적 사고냐, ③신사고(신사고)의 출발점에 서느냐 등이다. 만약 유훈 사고를 고수한다면 남북관계에서는 조국통일 5대 방침(98년 4월18일) 가운데, 반외세 자주, 민족 대단결, 남북관계 개선의 순서로 비중을 둘 것이고, 국내적으로는 사상·군사 강국을 근거로 경제강국 건설을 할 것이다. 만약 신사고에서 출발한다면 내부적으로나 남북관계에서 정반대로 할 것이다. 김정일의 언급이 신사고라고까지 보기는 성급할 것 같고, 유훈 사고의 연장 아니면 거기서 과도기 사고로 진전되고 있는 단계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박=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에 대한 북한의 평가가 어떻게 공식화돼 가느냐를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의 대북(대북) 포용정책과 한반도 문제 해결 방법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바탕 위에서 김정일과 회담했으므로, 김정일의 방중 자체가 남북 정상회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북한의 전략적 우선 순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안전보장이고, 다음은 일본과의 수교로 배상금을 받아 경제를 회생하는 것이다. 지금 그 둘이 잘 안되니까 남북 대화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남한과의 경협은 큰 기대를 않는다. 한국은 남북 정상회담에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 같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남북간은 화평하게 지내자고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최대한 풀고, 일본에게 배상금을 받도록 해달라고 할 것이다.

▲하=비극인지 운명인지 모르지만, 19세기 이래의 한반도 주변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두 사람이 앉아서 하지만, 그 뒤에는 2~3명이 어깨너머로 바라보는 형국이다. 냉전구조로 본다면 이번 김정일의 방중으로 북·중과 한·미·일이 서로 연대를 강화하는 구조이지만, 이미 한·중 관계 발전 등 일정한 탈냉전적 요소도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냉전 구도로 되돌아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중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미·중이 다같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도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정리=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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