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앞두고 외유내강의 전략적 접근 자세를 보이고 있다.

콜린 파월(Colin Powell)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이 지난 18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재래식 군사력 문제에 관한 논의를 거부한 데 대해 20일 상원 청문회 증언을 통해 상당히 융통성 있는 미국측의 유권 해석을 내렸다.

그는 우선 “북한은 (성명을 통해) 본질적으로 재래식 군사력 문제가 현 시점에서 논의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그 같은 성명이 미·북 대화 재개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문제가 미·북 대화의 의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지만, 논의 시기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마지막으로’ ‘단계를 밟아서’라는 표현들을 동원해, 우선순위를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암시했다.

그는 미국을 방문한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지난 7일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이 특정(북한 재래식 군사력)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총체적인 논의를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의제의 꼭대기(top)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북한 재래식 군사력 문제를 중시하지만, 이 의제 자체가 미·북 대화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상황은 연출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태도를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북한 군사력 문제를 미·북간 의제로 다루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이미 미국측에 전달한 터이다.

국무부의 리처드 바우처(Richard Boucher) 대변인도 전날 브리핑에서 북한과의 대화 의제를 재조정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밝히면서도 “우리는 북한이 대화할 태세를 갖추는 적절한 시기에 의제를 확정할 것”이라고 말해, 의제에 관해 약간의 ‘숨통’을 열어 두었다.

21일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도 북한 재래식 군사력 문제가 논의될 예정이지만, 양국이 이 문제 해소를 위한 전략적 협의를 하기보다는 한·미 군사 방위태세 강화에 합의하는 선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향후 미·북 대화에서 양국이 접근 가능한 의제는 북한 미사일 문제로 자연스레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핵 문제는 북한이 경수로 건설 지연으로 인한 보상을 요구하는 반면, 미국은 과거 핵 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당장은 이견 해소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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