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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소년이 고발하는 북한 (길수군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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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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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화가 장길수군의 공개처형 장면-인육삶는 그림 입수

지난 99년 1월 탈북하여 중국에 은신 중인 탈북 소년 화가 장길수(17ㆍ가명)군 가족이 최근에 그린 미공개 그림 20여 점이 입수됐다.


◀ 길수군이 그린 인육을 먹기 위해 사람 시체를 토막 내서 솥에 넣고 삶는 장면. 그림 뒷면에는 '며칠 굶으니 정신이 나가서 사람을 잡아 각을 뜨고 있다. 후에 살인자로 사형당해도 오늘은 고기를 실컷 먹어보게 되었구나'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길수와 그의 형 장한길(20ㆍ가명)군이 그린 이 그림들은 북한의 공개 처형 장면, 토막낸 인육(人肉)을 솥에 넣고 삶는 장면, 풀죽을 쑤기 위해 풀을 다듬는 장면, 중국에 숨어 사는 탈북자들이 공안의 단속에 붙잡혀갈까봐 숨는 장면 등을 담고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의 집에 들어가 옥수수와 쌀, 옷 등을 훔치다 붙잡힌 어느 아버지의 공개 처형 장면(아래 시리즈 그림)은 길수군이 탈북하기 전 북한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을 그린 것이며, 인육을 솥에 넣고 삶는 장면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라 한다.

길수군 가족의 그림은 지난 99년 서울에서 열린 서울NGO 세계대회에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크레용 그림 20점이 출품되면서 국내 언론에 알려졌고 그간 뉴스위크,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 영국의 채널 4 텔레비전 등에도 소개돼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번에 주간조선이 입수한 그림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작품들이다.

중국 동북 3성의 흑룡강성, 요령성 등지에 흩어져 숨어 살고 있는 길수 가족은 한때 한 살짜리 젖먹이부터 67세 노인까지 16명(남자9, 여자7)이나 되었으나 지난 3월 길수 어머니 정순실(46ㆍ가명)씨와 외할머니 김춘옥(67ㆍ가명)씨, 친척 김광철(27ㆍ가명)씨와 그의 부인 이성희(25ㆍ가명)씨, 김씨 부부의 한 살 된 아들 한국 등 다섯 명이 탈북자의 밀고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심문 과정에서 이들이 외국 언론에 소개된 탈북 화가 길수 가족임이 드러나는 바람에 즉각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고 한다.

■어머니는 붙잡혀 北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

정순실ㆍ김광철씨는 송환 직후 '해외에 공화국의 실상을 폭로한 죄'(중국에서의 한국인 접촉 및 출판행위로 국가 명예를 훼손한 죄-편집자 주)로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생사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외할머니 김춘옥씨는 고령(高齡)을 이유로, 이성희씨는 젖먹이 아이가 달린 상태라서 수감됐다가 석방되었다. 이들은 그 직후인 지난 5월 재차 탈북했다. 이 와중에 이성희씨가 강을 건너다 중국 국경수비대에 체포돼 또 다시 북한으로 송환됐다.


◀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됐다가 '해외에 공화국 실상을 폭로한 죄'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길수 어머니 정순실씨. 뒤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길수군이다.


길수군의 어머니 정순실씨는 북한으로 송환되기 전 서울의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사무국장 문국한ㆍ전화 720-3143ㆍ인터넷 홈페이지 www.NKnet.org)에 보낸 녹음 테이프에서 중국에 숨어사는 불안감, 한국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자유의 땅이라는 나라(중국)에 왔지만 중국 정부에서 북조선 사람을 보기만 하면 붙들어 다시 북한에 넘기는 위험성이 항시 따르는 속에 있습니다. 시간적 문제이지, 다 잡혀갈 것은 뻔한 일입니다. 저는 오늘 아이들을 거느리고 바닷가에 나왔습니다. 저 바다 어딘가 한껏 나가면 우리들이 그리는 진정한 조국 대한민국이 있다는데…. 우리는 왜 대한민국에 갈 수 없는가. 우리가 가지 못하고 이 중국 땅에서 그저 캄캄한 날들을 보낸다면, 온 식구가 생사를 각오하고 저 검푸른 파도에 몸을 던지겠습니다. 혹 살면 대한민국의 품에 안길 것이고, 못살면 바다의 고기밥이 된다 해도 이 넓은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습니다.>

길수 어머니는 끝내 한국행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생사불명 신세가 되고 말았다. 외할머니로부터 어머니의 비극을 전해 들은 길수군은 구명운동본부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머니는 감방에서 할머니와 헤어지면서 유언이 될지도 모르는 말씀을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큰아버지(길수 가족을 돕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편집자 주)를 친아버지로, 큰어머니를 친어머니로 모시고 너희들이 꿈속에서 그리던 자유 대한민국으로 꼭 가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하신 말씀을 전해 듣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짧은 말 속에는 많은 뜻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한, 그 정치에 대한, 독재자에 대한 저주와 원한, 너희들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비는 어머니의 마음이었고, 세상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너희들만이라도 노력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북한이야말로 이 시대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21세기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길수군과 형 한길군은 중국 요령성의 한 지역에서 2년째 불안한 은신생활을 하고 있는데 오랜 도피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있다고 한다. 이들은 동북 3성 지역에서 활동하는 선교팀의 도움을 받아 제3국으로 탈출을 기도했으나 때마침 제3국행 루트가 폐쇄되면서 절망감에 빠져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출간한 ‘눈물로 그린 무지개’(문학수첩 발행)라는 단행본도 판매가 극도로 부진, 인세(印稅)를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당장 호구지책이 막막한 형편이다. 이 책을 기획한 문학수첩의 김종철 주간은 “책이 발간된 시점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때였기 때문에 판매가 부진했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해 탈북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제3국으로의 이동' 권유

지난 99년부터 길수군 가족을 돕고 있는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 회원들도 이들의 은신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12명이나 되는 가족의 생계비와 주거비 마련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단체의 운영자인 문국한(文國韓) 사무국장은 길수군과 가족 5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직후인 지난 3월 26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을 방문, 강제송환 위험에 처해 있는 길수군 가족에 대해 설명하고 이들의 한국행(行)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물었으나 ‘제3국으로의 이동’을 권유받았을 뿐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왔다



북한의 공개처형 장면을 그린 길수군의 그림
가족이 굶주리자 이웃집에 들어가 쌀과 옥수수 등을 훔친 죄로 한 가정의 아버지가 공개처형된다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안전원이 군중 앞에서 사형수의 죄목을 낭독한다.
사형수의 입과 배 무릎을 밧물로 묶는다.
사형수를 향해 총을 쏘자 사형수는 피를 뿜으며 죽어간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형수.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다.


5월 18일과 22일에는 베이징(北京)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을 방문, 길수군 가족 5명이 북한에 강제송환되어 그 중 2명이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된 사실을 알렸다. 문 국장은 UNHCR 직원에게 중국에 남은 길수 가족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난민으로 인정할 것과 중국 공안에 체포될 경우 북한 송환 중지를 요구했으나, 모든 것은 운에 맡겨져 있는 형편이다. 희망에 부풀었던 길수군 가족들은 세월이 흘러도 언론 보도나 몇 줄 나올 뿐 한국 정부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자 “믿었던 대한민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으로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에 나가 기자회견을 한 뒤 공개적으로 망명 요청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길수군의 그림을 소개한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필립 셔웰 기자는 '한 소년의 그림에 비친 북한의 공포'라는 기사에서 “한국 정부는 지금 사회주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이른바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그들의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동포들(중국에 은신 중인 탈북자-편집자 주)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쓰고 있다.

길수군 가족이 목숨을 걸고 북한 땅을 탈출한 진정한 이유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그림 몇 장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물감과 도화지가 아니라 마음놓고 숨쉴 수 있는 자유로운 땅이 아닐까.



◈길수의 편지

구원의 손길과 자유의 그날을 그리며…

이 편지는 중국 요령성의 한 지역에 숨어 살고 있는 장길수군이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를 통해 주간조선에 보내온 것으로서 현재의 어려운 처지와 한국행의 희망이 간절히 담겨 있다. (편집자 주)

저는 1999년 1월 11일 피눈물의 두만강을 건너 현재 중국 땅에서 탈북자의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17살 장길수입니다. 북한에서 먹고 살 길이 없어 자그마한 위장이나 하나 채우기 위해,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탈북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형님을 남겨둔 채(길수의 아버지와 형은 북한에 살고 있음-편집자 주)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에 대한 생각보다는 굶주림의 고통이 나에게는 더 컸기 때문입니다. 굶주림이라는 것이 어찌나 무서운지 부모 자식을 갈라 이산가족을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는 사람까지 잡아먹는 비참한 현실을 빚어내더군요.

그래도 중국에 와 보니 북한보다는 많이 괜찮았습니다. 탈북자인 우리도 배는 채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우리에게는 정신적 심리적 고통과 불행이 뒤따랐습니다. 수시로 조여드는 감시와 조사 속에 1시간 1초를 숨쉬고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초보적인 인권마저 보장되지 못하여 소나 돼지처럼 강제 송환되어야 하는 것이, 낯설은 이국 땅에서 잡히지 말고 먹고 살려고 헤매다가 매맞고 칼에 맞아 눈덮인 논밭에서 나뒹구는 원한의 시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기고 북한에 대한 원한만이 마음에 가득 찹니다. 죽으면 죽은 대로, 살면 살아 있는 대로 아무런 보장없이 하루살이처럼, 바람에 날려다니는 먼지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탈북자들입니다. 중국 공안의 손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들 운명이었지만 큰아버지, 큰어머니(길수 가족 보호자를 의미-편집자 주)는 사랑의 품에 안아주셨고 내 마음 속에 삶의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나 자신도 살아 숨쉬는 인간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대한민국을 알게 되었고, 자유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유엔 인권사무소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한 인간이 진정으로 인권을 보장받고 자유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귀한 것인지 지금에 와서야 진심으로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희생 없이,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좋은 결과가 얻어지지 않듯이 우리가 자유를 찾는 길에도 쓰라린 고통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꿈속에 그리던 대한민국에 죽어서라도, 뼈라도 그 땅에 묻어달라고 하시던 우리 어머니가 중국 공안의 손에 잡혀 강제 송환되어 죄 아닌 죄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영영 나오지 못하는 지옥입니다. 한 인간을 비방하고 풀 캐어먹은 사실을, 자기 자신이 살아온 생활을 책으로 엮은 것이 무슨 죄입니까. (중략)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이번 가는 길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죽음보다 더 큰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끝까지 가렵니다. 이 지구 땅에 다시는 북한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저의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가렵니다. 생각해보면 북한이야말로 이 시대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21세기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노력하셔서 쓰러져가는 저 북한 백성들을 자유와 인권, 마음껏 먹고 살아갈 수 있게끔 노력하여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큰아버지, 큰어머니 하시는 일을 도와주시고 협조하여 주신다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자유의 그날을 그리며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면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2001년 5월 29일. /김용삼주간조선기자(ys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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