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박의 ‘우리 영해 통과 사전합의’ 주장과 우리 군의 수세적 대처 등이 담긴 북한 선박과의 교신록 공개와 관련, 여야는 19일에도 논란을 벌였다. 이에 따라 현행 군사기밀 제도의 효용성에 대한 해묵은 논란도 재연되고 있다.

민주당 유삼남 의원은 이날 당4역회의 전 브리핑을 통해 “공개된 교신록은 분명히 3급 비밀”이라며 관련자 처벌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과 박세환 의원 등은 “이번에 공개된 교신록은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기밀 가치가 전혀 없다”며 “특히 지난 4일 국방부가 교신록 일부를 공개해 놓고 무슨 소리냐”고 반박했다.

국방부가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에게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2월 현재 군사기밀은 1~3급 모두 56만1924건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1급 비밀은 8건에 불과했고, 2급 비밀이 29만1011건, 3급 비밀이 34만2905건이었다. 대외비까지 포함한 비밀문서는 모두 110여만 건으로, 무게로만 95t에 달하는 엄청난 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3급 비밀의 경우, 비밀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 대부분이고, 행정 낭비와 국민의 알권리만 봉쇄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승국 의원은 “군이 민간업체와 공사계약을 하는 경우에도 계약서는 3급 비밀로 분류된다”며 “민간업체는 계약서를 마음대로 가지고 다니는데 군에서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기밀분류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은 “국정원이 가져온 자료 중에는 신문보도 내용에 3급 비밀 도장을 찍어 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같은 내용이 어느 부서에선 3급 비밀이고, 어느 부서에선 아닌 것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은 “국방부가 별 것도 아닌 것을 기밀로 분류해 국민의 알권리와 의정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나라당 강창성 의원은 “신문에 다 보도된 내용을 3급 비밀이라고 발을 뺀다”며 “작년 국감 때 1000여건의 자료를 요청했으나 국방부가 가져온 자료는 5%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각 군별로 비밀분류기준이 일치하지 않아 공군과 해군작전사령부는 부대편성과 전력내용을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서에 수록했으나, 육군 항공작전사령부는 ‘3급 비밀’이라며 비공개로 처리하기도 했다.

이런 한편, ‘린다 김’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군 전력증강사업 등 정작 보호돼야 할 1~2급 비밀들은 현역 군인들에 의해 로비스트들의 수중으로 손쉽게 빠져나가고 있다.
/ 송동훈기자 dhs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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