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없이 대화없다" 배수진

재래무기엔 "미군철수" 내걸어 쐐기
'보상'가능성 희백해 대화 험로 예고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북대화 재개를 원하는 성명을 발표한 지 12일 만에 북한이 공식 반응을 보였지만, 대화의 전망은 불투명해 보인다.

북한은 18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일단 ‘적대적’으로 규정하면서, 미·북 대화 의제에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을 추가해 올려 놓았다. 이는 부시 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북핵 포기 대가로 경수로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네바 합의의 이행 ‘개선’을 의제에 포함시킨 데 따른 대응으로 보인다.

부시 정부가 제네바 합의의 이행 ‘개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의 ‘과거 핵’ 사찰을 가능한 한 앞당기려는 취지이다. 북한도 그동안 과거 핵 사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대응 카드로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보상을 요구해왔으나, 이번에 미국이 이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키자 자신들도 의제로 공식 제기한 것이다.

북한은 부시 정부가 재래식 무기를 대화 의제로 올려놓은 데 대해서는 “최소한 주한미군이 물러가기 전에는 논의 대상으로조차 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결국 북한은 부시 정부가 클린턴 정부의 정책으로부터 뒤로 물러섰다고 판단, 자신들도 뒤로 물러설 뜻임을 밝힌 셈이다. 따라서 가뜩이나 낮은 단계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미·북 대화는 앞으로 쉽게 진전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북한은 이런 배수진 아래, 미국을 향해 94년 제네바 합의와 지난해 10월 북한 조명록 특사의 미북방문 때 발표한 미·북 공동커뮤니케로 돌아가 대화를 시작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클린턴 정부와는 다른 대북 인식 아래 차별화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부시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북한이 부시 정부를 향한 첫 요구로 ‘전력 보상’을 꺼낸 것도 대화의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북한으로선 클린턴 정부 때처럼 ‘당근’을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보낸 것이지만,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잘못한 일에 대해선 한푼이라도 ‘보상’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북한에 전력을 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군 전력 증강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더욱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경수로 건설 지연 책임의 상당부분이 북한측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양측간의 인식과 접근 자세에 극명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북 대화가 파국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이 단계적으로 대화를 진척시켜 나갈 계획인 데다, 북한도 일단 대화에는 응할 뜻임을 내비쳤으며, 양측 모두 94년 제네바 합의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기에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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