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성장의 산 신화 대북교류에도 큰 족적

정주영(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정 명예회장은 고도성장기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기업인으로 살아있는 ‘현대 신화(신화)’의 주인공. 숱한 업적과 함께 한국 경제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인(거인)’이지만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와 쌀가게로 독립했다. 47년 현대건설을 창업한후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도로, 교량, 항만 등 토목건축공사를 통해 단시간에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본격적으로 키우게 된 것은 5·16으로 들어선 군사정부에 의해 경제개발 계획이 수립되면서 부터. 현대건설은 삼척, 영월 화력발전소와 소양강 댐 등 각종 발전소와 댐, 고속도로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국내 최대 건설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특히 68년 착공해 2년 5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완공한 경부고속도로는 일부 졸속공사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경제성장의 상징처럼 되었다. 정 명예회장은 65년 태국진출을 시작으로 베트남, 호주, 파푸아뉴기니아, 인도네시아를 거쳐 70년대 중동지역 대형 건설공사를 잇달아 수주해 막대한 외화획득과 함께 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정 명예회장은 건설사업 성공을 토대로 72년 조선사업에 나서 불과 8년 만인 80년 세계 10위 조선소로 성장시켰다. 또 66년 자동차 회사를 설립해 독자모델 ‘포니’ 개발과 86년 ‘엑셀’ 미국수출 성공을 이룩하며 국내 최대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특히 98년에는 특유의 결단으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세계10대 업체가 됐다. 99년 빅딜과정에서는 LG반도체까지 인수했다. 그는 대북 경제교류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통일소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서는 ‘통일의 상징’을 연출했다. 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을 통해 금강산 관광 및 개발사업권 등을 따냈고, 이는 남북 화해분위기 조성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 정 명예회장은 기업 외적인 일에 신경을 쓰면서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된 이후 형식상이지만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 타이틀을 사용해야 했다. 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무리한 대북사업 추진은 현대그룹 부실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후계구도를 확정하지 않고 본인이 모든 사업을 총괄하겠다는 욕심은 현대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지난 3월 몽구(몽구)·몽헌(몽헌) 두 형제 회장의 그룹 경영권 다툼과 이후 그룹 내부 경영진들의 불화와 반목은 결국 정 명예회장 본인의 ‘명예롭지 못한’ 퇴진으로 연결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은 20세기 한국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일단 높이 평가돼야 한다”면서도 “아직까지 현대그룹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만큼 앞으로 어떻게 현대 사태를 수습하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호기자 tell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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