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령부가 영해를 침범한 북한 선박과 우리 해군함정 사이의 교신내용을 유출한 야당의원 보좌관 소환조사 방침을 밝히고 이에 대해 야당이 반발하면서 정국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소환조사의 당·부당을 떠나 군과 정부에 묻고 싶은 것은 최근 북한 선박의 잇따른 침범으로 빚어진 난처한 국면을 돌파하는 데 있어 과연 이런 식의 대응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정말로 믿고 있느냐는 것이다.

기무사는 야당의원 보좌관이 기자에게 넘겨준 교신록이 군사기밀보호법상 3급 군사기밀로 분류돼 있는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특정사안을 군사기밀로 분류하고 급수를 매기는 군내부의 절차까지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번 북한 선박 교신록의 경우는 상식적으로만 봐도 몇가지 측면에서 사정이 다르다.

우선 그 교신내용은 우리 뿐 아니라 북한당국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뻔히 아는 것을 우리 국민에게만 기밀로 한다는 것은 논리상 우리 국민을 북한당국자들보다 하위 레벨에 놓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또 영해침범 당시 북한 선박과 우리 함정 사이의 교신은 국제공용주파수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 주파수대역에 있었던 통신기 사용자들이라면 누구나 대화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군사기밀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된다.

더욱이 국방부는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영해침범 이틀 뒤인 5일 아침 언론브리핑에서 당시 북한 선박과 주고 받은 교신내용 중 상당부분을 공개했다.

브리핑에서 공개된 대목은 이번에 문제되고 있는 교신록에 포함돼 있는 내용이다.

군이 스스로 군사기밀의 일부를 필요한 만큼 골라서 유출해놓고, 이제와서 불리한 내용을 전한 사람에게만 새삼 기밀유출 책임을 묻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군사기밀 유출논란은 감추고 싶었던 굴욕적 교신내용을 되풀이 상기시키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군과 정부여당에 별 실익을 가져다줄 것 같지 않다.

사태의 핵심을 좀더 정확히 보고, 무엇이 진정으로 실추된 위상과 신뢰를 되찾는 길인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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