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로부터 난민지위를 부여받고도 러시아와 중국을 오가다 끝내 북한으로 송환된 7인의 탈북자 사건은 한국 외교의 처참한 실패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또한, 한국 외교부의 미숙한 일 처리와 함께 수교 10년이 가까운 러시아와 중국이 이번에 보여준 비인도적 처사도 이들 두 나라가 과연 한국을 성실한 우방으로 대하고 있는지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의 북방외교 전반에 대한 재평가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출국 비자까지 발급했다가 탈북자들을 중국으로 넘겨준 러시아와, ‘인도주의적(인도주의적) 처리’를 다짐해 놓고도 이들을 사지(사지)로 되돌려 보낸 중국의 처사 때문에, 한국의 대(대)러시아 및 대중(대중) 관계는 상당기간 냉각될 것 같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조용한 외교’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이번에 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호영일(30·함북 길주)씨 등 탈북주민 7명은 작년 11월 초순 북한을 탈출, 중국을 거쳐 러시아에 밀입국했다가 민가에서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됐다. 이 사실은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 연해주 TV방송 등 현지 언론에 의해 하루 만인 12일 보도됐고, 일본의 산케이(산경)신문 등 외국 언론이 뒤따라 보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 영사관은 사건 발생후 3주일이 되도록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연해주 지사(지사)가 나홋카 공단 투자 유치를 위해 11월말 서울을 방문,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도 탈북자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현지 취재를 통해 이들이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주민이라는 사실을 작년 12월1일 보도한 뒤에야 우리 외교부와 블라디보스토크 영사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는 처음엔 긍정적 자세를 보였다. 모스크바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연해주의 국경수비대에 구금된 7인을 면담하도록 허락했다. UNHCR가 이들의 한국행 희망을 확인, ‘난민’ 지위를 부여하자 러시아 외무부는 이들이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12월8일에 10일짜리 출국 비자를 발급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북한이 “탈북자들은 북한주민”이라며 강력히 항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당국은 결국 억류된 이들을 풀어주지 않아 출국이 저지됐으며 비자 기한은 만료됐다. 12월23일 러시아는 한국에 “비자가 잘못 발급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12월27일 이인호(이인호) 주 러시아 대사를 카라신 차관에게 보내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호소했다. 카라신 차관은 “냉각기를 갖고서 국내법, 국제법 등을 고려해 처리하겠다”고 했으나 사흘 뒤인 30일 러시아 국경수비대는 7인을 돌연 중국으로 넘겨버렸다. 국경수비대로부터 이를 통보받은 우리 정부가 러시아 외무부에 항의했으나 러시아는 ‘국경수비대가 한 일’이라는, 말이 안되는 변명만 했다.

러시아가 이들을 중국에 넘길 때부터 이들의 북한 송환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 문제에서 러시아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 ‘난민’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는 우리측 홍순영(홍순영) 장관이 탕자쉬안(당가선) 부장에게 직접 선처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보내자 대변인을 통해 ‘인도주의적 처리’를 다짐해 놓고도 7명을 북한에 전격 송환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한국 외교부는 러시아와 중국이 탈북자들을 ‘핑퐁’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사건 초기에 “한국 언론이 이를 여론화할 경우 문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일정 시기까지 비보도를 요청했고, 언론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외교부는 러시아가 7명을 몰래 중국으로 넘겨주기까지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권현기자 khjung@chosun.com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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