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농경지의 72%가 피해, 식량난 가중될듯


◇ 가뭄과 고온으로 바닥을 드러내며 갈라진 북한 농촌의 논. 북한 화보 잡지 '조선'이 작년 9월호에 게재한 사진이다.


북한 전역이 ‘천년만의 왕가뭄’이라는 사상 최악의 장기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이상고온과 강풍을 동반한 이번 가뭄은 3월 초부터 시작돼 6월 초 현재까지 90일 이상 계속되고 있다. 이 기간 강수량은 평균 18.3mm로 예년 같은 기간의 11%, 지난해 같은 기간의 17% 수준이다. 평양, 평남 평성·안주·숙천, 황남 신천·장연·은율, 황북 수안·토산 등지에서는 4월 한 달동안 단 한 차례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1000년 만에 한 번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는 북한 기상수문국(기상청) 관계자의 말을 실감케 해준다.

북한 농업성의 김혁진 부국장은 6일 조선중앙방송과 가진 대담에서 가뭄피해 면적이 전체 농경지의 72%에 해당하는 133만여 정보에 이른다고 밝혔다.

북한 농업성 자료에 따르면 6월 1일 현재 감자와 밀, 보리, 강냉이의 80∼90% 이상이 말라죽었다. 강원도 고성, 함북 청진, 황북 사리원, 황남 해주 등지에서는 강풍에 의해 농작물이 뿌리째 뽑히고 결실기에 접어든 살수 복숭아 등 과일들이 전부 떨어져 버렸다.

이 같은 이상 기후현상으로 인해 토양의 수분증발량이 많아져 "농토마름"(토양건조)의 깊이가 25cm를 웃돌아 농작물의 싹트기와 생장을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가뭄은 가뜩이나 심각한 북한 식량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큰물피해대책위원회와 함께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는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벼 앞그루 작물로 심은 겨울밀과 봄밀, 보리와 감자 등 이모작 작물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앞그루 작물이 전체 농산물 수확량의 10%를 차지하며 10월 추수 전까지 개인 식량배급체계를 유지해준다면서 이모작 작물의 가뭄피해로 북한 식량난이 가중될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은 심각한 가뭄 피해 극복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농업성은 지방에 파견된 일선 간부들의 피해상황 조사를 바탕으로 관개시설을 정비하고 양수기를 최대한 가동하기 위한 전력수급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각 도(도) 농촌경리위원회 관계자들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곳곳에 우물을 파고 물주머니(소규모 저수지)와 굴포(웅덩이)와 쫄짱(관정)을 만드는 한편 주민들과 기계장비를 동원해 농업용수 운반과 물주기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바닷물을 강물에 끌어넣는 비상조치까지 취하고 있는 것으로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오랜 가뭄으로 각지 수력발전소의 전력생산에 차질이 빚어짐에 따라 각 공장·기업소에서는 "교차생산"(交叉生産) 방식 한층 강화해 에너지절약과 생산정상화에 주력하고 있다. 교차생산이란 같은 전력계통에 망라되어 있는 전력 수요자들 사이에 생산을 엇바꾸어 가며 진행함으로써 전력공급과 소비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생산방식. 북한은 신문·방송을 통해 전력사정이 어려움을 상기시키면서 공장·기업소에서 매월 상순과 하순 매주 또는 날짜별, 기대(機臺)별로 짜놓은 교차생산조직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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