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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구석까지 달러貨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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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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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화로 바꾼 돈표는 조선무역은행이 달러나 엔화 등 경화 대신 바꿔주는 것으로 8종의 지폐로 되어 있다.

미국 달러화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외화상점은 물론 장마당에서도 ‘딸라(달러)’가 북한 원화보다 더 대접받는다. 쓸 만한 물건들은 대부분 외제고, 외제 물건들은 가격 자체가 아예 달러로 매겨져 있다. 시골집에도 몇 달러씩은 갖고 있게 마련이다.

달러화가 북한 원화를 몰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이고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달러가 대접받는 나라가 된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북한에서 널리 통용되는 외화 중에서도 달러화는 중국의 인민폐, 일본의 엔화 등을 제치고 ‘외화의 왕’ 대접을 받는다. 평양, 함흥 등 대도시 외화상점 부근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외환 암거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간 과장하면 외환암거래상이 ‘군중집회’를 하는 것 같이 운집해 있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장마당이나 외화상점 등 일반 상거래에서도 달러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다만 북한에 유입되는 달러화는 대부분 100달러짜리 최고액권이어서 자잘한 물건을 사고 팔자면 거스름돈 문제가 발생한다. “평양 고려호텔에서도 거스름돈이 없어 다른 물건을 대신 끼어 받았다”는 방북자들의 경험이 이를 방증한다.

북한에서 애초에 달러소지는 금지돼 있었다. 달러나 엔화와 맞먹는 ‘외화와바꾼돈표’도 70년대 말에야 생겼다. 일반주민들은 북한 내화만으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어떤 노인이 6·25 때 미군들이 남기고 간 달러화를 도배지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 정도였다.

달러 등의 외화가 내화를 본격적으로 구축(驅逐)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다. 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일본이나 미국에 거주하는 해외 친척들과 접촉할 것을 적극 권장했다. 외국의 친척들을 통해 유입된 달러화는 북한의 상식적인 화폐개념을 뒤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100달러 한 장이면 노동자가 10년치 월급을 모조리 저축한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경제가 최고로 악화된 시점에서 노동자 월급은 약 50센트의 가치를 가진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은 달러화의 대량 유입의 통로를 열었다. 이때부터 북한돈으로는 물건을 살 수 없는 외화상점이 대거 생겨나 외화를 벌기 위한 총력전이 벌어지게 된다. 전 주민이 본업 외에 따로 외화벌이를 위한 부업에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들이 버섯·조개 등을 가져오면 이를 달러로 계산해 주기도 한다.

달러의 위력이 엄청나다 보니 ‘가딸라'(위조달러)까지 판을 친다. 정교한 위조달러는 100달러짜리가 70~80달러까지 아예 가격이 형성돼 있을 정도라고 한다. 북한은 현재 나진선봉지구에서 외화로바꾼돈표 제도를 폐지했고, 평양시의 외교관 등 외국인이 직접 외화를 쓸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북한 내에서 외화 사용은 아예 합법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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