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한 달 사이에 다섯 번(닷새에 한 번꼴)이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요청했다. 전례없는 일이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상대방 지도자의 방문을 이처럼 반복해서 간절하게 요구한 것은 그 전례는 고사하고 외교상 있을 수 있는 일인지도 의문이다. 김 대통령이 그런 정도의 상식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 자신 이런 요청이 나라의 체통에도 걸맞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무리한 언급을 되풀이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로서는, 아니 그가 보기에 우리나라로서는 김정일의 답방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공존에 관건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체면이나 체통보다 중요한 것이며 따라서 이것을 특히 외신을 상대로 반복해서 알림으로써 김정일이 어떤 국제적 관심이랄까 압력 같은 것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이 시작한 일, 즉 「남북정상의 만남」을 자신의 임기중에 어느 선에서 매듭지어야겠다는 개인적 소망과 업적에 대한 의식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김 대통령의 이런 저돌적이고 안면몰수식의 호소나 요구가 효력이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김정일의 행동 패턴을 살필 필요가 있다. 김은 외교적으로 이미 발표된 모스크바 방문과 푸틴과의 회담도 뚜렷한 이유의 공개없이 연기한 사람이다. 외교소식통들은 러시아가 줄 무기원조의 불투명성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가시적인 성과나 분명한 예측 없이는 아무리 약속된 것이라도 쉽게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김정일은 「서울답방」에서 얻을 것이 많으면 김 대통령이 여러번 공개적으로 요청하지 않아도 올 것이고 얻을 것이 없거나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아무리 오라고 간청해도 오지 않을 것으로 봐야 한다.

김정일이 「서울답방」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보다 규모가 큰 대북 경제지원이다. 지금 그는 다시 어려워지는 식량사정과 경제상황에서 북한주민을 먹여살리고 경제를 꾸려가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현대」의 부실과 남한경제의 한계, 그리고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정치적 걸림돌 등을 보면서 그는 과연 남쪽에서 경제적으로 무엇을 더 얻어낼 수 있을 것인지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서울답방」으로 기대하는 또다른 것은 「미국의 호의」일 것이다. 김 대통령은 여러 차례 남북관계의 호전은 상당 부분 미국의 대북시각 교정에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미국이 도와줘야 국제금융기관의 대북지원이 가능해지고 그래야 북한의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촉구할 때마다 자신이 미국에 대해 북한을 도와줄 것을 입이 닳도록 설득하고 있음을 덧붙였다.

그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좌하는 것이 지금 모색단계에 있다. 북은 우선 여기서 미국의 생각과 전략을 타진할 것이고 김정일의 답방은 아무래도 그 결과에 대한 판단에 따라 결정될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 시기적으로 서울방문이 지금 절실하지 않다는 얘기다.

김정일은 자신의 서울방문이 남한 내에 어떤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환영의 정도, 그의 언동을 둘러싼 남쪽 세력 간의 마찰과 갈등, 그리고 그가 필연코 짊어지고 올 「주체혁명이라는 상품성」들도 그의 서울행(행)을 좌우할 변수가 될 것이다.

아마도 그의 계산 속에는 「김대중 정권」의 효용성 문제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김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의 하락 경향, 내년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그리고 그 이후에 설정될 정치권력의 성격 등은 그가 지금 이 정권과 꼭 상대할 필요가 있는가를 머뭇거리게 만들 수도 있고 또 이런 머뭇거림을 미끼로 현 정권의 조급함을 유도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청와대도 덮어놓고 답방만을 촉구할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고 밀 것은 밀고 당길 것은 당기는 현명함을 보여야 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