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체류한 13일부터 15일까지 2박3일 동안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둘만의 ‘독대(독대)시간’은 모두 6시간20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독대는 5차례 380분이며, 수행원들과 함께한 오·만찬과 합의문 서명식까지 포함하면 무려 11시간이나 된다고,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1차 독대는 13일 순안공항 도착 후 백화원영빈관까지 가는 동안 리무진 안에서 50분간 이뤄졌다. 두 정상은 또 백화원영빈관 도착 직후 1차 공식 정상회담(27분)을 했고 14일 단독회담에서는 무려 3시간50분간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회담에는 배석자가 있었지만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오갔다고 한다. 두 정상은 또 평양 출발일인 15일 고별 오찬에 앞서 단둘이서 30분 가량 함께 보냈다. 이어 오찬이 끝난 뒤 다시 나란히 리무진을 타고 순안공항까지 오면서도 40분간 단둘이 대화를 했다.

박준영(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오찬에서는 두 정상이 무릎을 맞대고 무언가를 심각하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오찬행사에서 김 위원장이 “(우리 둘 사이의 얘기는) 알릴 것도 있고 알리지 못할 것도 있다”고 말한 점이나, 김 대통령이 “회담내용을 모두 공개할 수 없지만…”이라고 말한 점은 의미있는 대목이다.

○…북측 안내원 등 관계자들은 이번 방북 대표단원 들의 인적 사항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해찬(이해찬)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게는 민주화 투쟁 및 투옥 경력을 언급하는가 하면, 이완구(이완구) 자민련 의원에겐 자민련의 당 노선에 대해 토론을 붙여오기도 했다. 김재철(김재철) 무역협회 회장에게는 “교과서에 김 회장 글 실린 것 알고 있습니다”라고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이 동생에게 쓴 글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한국 정세에도 밝아, 4·13 총선과 관련, ‘한나라당이 (국회의원에) 많이 (당선)돼서 정치가 잘 되겠수까’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 공무원은 전했다. 북측 안내원들은 임종석(임종석) 의원 등 386세대에 관심이 많았지만 ‘386 중에도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더라’고 묻는 등 정확한 개념은 모르는 듯했다고 한다.

○…북측 관계자들은 입을 맞춘 듯 김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전임 대통령들과 비교해 가며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옛날 정치인들이 후회하게 만들자’면서 남북관계를 조속히 발전시킬 것을 제안했다. 이해찬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북쪽 사람들은 ‘역대 정부는 말로만 통일을 외치고 실천의지는 없었는데 김 대통령은 반대다’고 하는가 하면, 내게도 ‘당신이 정책위 의장이니 통일에 대해 전폭 지지하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컴퓨터 요원 육성 기관인 컴퓨터 센터는 일본 교재로 교습이 이뤄지고 있었고 컴퓨터 자판도 일본어였다고 이 기관을 견학한 수행원들을 전했다. PC는 펜티엄급에 윈도우 98을 운영체계로 하고 있었다. 남측 대표단이 인민대학습당(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안내원은 “도서를 3000만권 소장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찾고 싶은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 명이 외국서적 이름을 적어내자 2분만에 책이 나왔는데 안내원은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으로 책을 찾아보내는 시스템 덕분”이라고 자랑했다.

○…북측 고위 관계자들은 경제협력 방안에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손길승(손길승) SK 회장은 “15일 오찬 때 김정일 위원장의 매형인 장성택과 합석했는데 ‘남북경협을 위해 제안할 것이 없느냐’고 물어와 ‘투자보장협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달라’고 하자 장은 ‘그럼 위원장에게 직접 건의하라’며 거의 끌다시피 김 위원장 앞으로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방북 수행원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권위가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14일 오후 북측과 분야별 협력방안을 논의했는데 “정상회담 결과를 봐야 한다며 머뭇머뭇하던 북측 대표들이 공동선언 합의 사실이 알려지자 갑자기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참석 일정은 사전 공개되지 않아, 검색 등 조사가 면밀해지면 ‘위원장이 나올 때구나’라고 짐작하는 식이었다. 15일 목란관에서 김 대통령이 초청만찬을 했을 때는 참석자들은 신발까지 벗고 조사받아야 할 정도였다. 김 위원장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총국 관계자들의 기세도 대단했다. 리종혁 김영성 등 북측 고위관계자들도 호위총국 사람들에게 일일이 체크를 받아 입장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되기도 했다.

○…대통령 주치의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온 연세대 의대 허갑범(허갑범·내과) 교수는 “김 대통령이 머무르는 장소에는 앰뷸런스 2대와 심장내과 전문의 2명, 응급의학 전문의 1명을 항상 대기시킬 정도로 북한이 준비를 철저히 한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김 대통령은 긴장한 상태였으나, 아침 저녁으로 건강을 체크한 결과 몸 상태가 좋았다고 했다.

○…백낙환(백락환) 인제학원 이사장은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오는 길가의 산엔 나무도 울창했고, 논에 모내기도 다 돼 있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평양 근교의 산은 민둥 벌거숭이였고, 논에도 모내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 이사장은 “북한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경제사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며 “북한사람들의 표정은 밝았으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민배기자 baibai@chosun.com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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