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차례 장관급회담에 눈길

제주해협을 침범했던 북한 상선 ‘청진2호’가 “6·15 북남협상 때 제주해협 자유통항이 결정됐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정부는 “거론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등 일각에선 이면합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6·15와 그 이후 남북 당국자가 공식, 비공식으로 만난 자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설사 ‘이면 합의’가 있었더라도 누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방법으로 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당장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3일 평양공항에서 숙소인 백화원영빈관까지 가면서 배석자 없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같은 승용차를 탔다. 동승시간은 50여분으로, 여기서 나눈 대화 내용은 지금까지 완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두 정상이 공식회담이나 오찬 및 만찬에서 마주한 시간은 8시간 남짓으로 모두 배석자가 있었다. 김 대통령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도 회담을 가졌으나, 역시 공식 수행원들이 배석했었다. 자연 이런 자리에서 ‘이면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이나, 오·만찬에서 다양한 화제가 오를 수는 있다.

정상회담 기간 중 청와대와 국정원 등의 정상회담 준비팀도 북측과 공동선언 문안 작성과 일정 협의를 위한 협상을 했다. 그러나 공동선언 문안 서명에만 3시간이 걸리는 등 힘든 협상이라, 구체적인 사안이 논의되긴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최고위급회담’ ‘평양상봉’ 등으로 표기해왔다는 점에서 청진2호가 말한 ‘6·15 북남협상’이 꼭 정상회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관급회담이나 경협추진위원회 등 이른바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각종 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울과 제주, 평양을 오가며 네 차례 열린 장관급회담은 수석대표 접촉이 자주 있었다. 작년 9월 3차 회담이 시작되기 앞서 가진 수석대표접촉에서 북측의 전력지원 요청이 있었으나, 양측은 아예 거론조차 안된 것으로 합의하고, 언론에 대해 남북 모두 “그런 일 없었다”며 잡아뗐었다. 이런 점에서 장관급회담에 ‘이면 합의 혐의’가 쏠릴 수도 있고, 회담의 성격상 국방장관급 회담에서 논의됐을 가능성을 점쳐볼 수도 있다.

그 밖의 전력협력 경의선 복원 개성공단 임진강 공동수방 실무협의 등이 있었으나, 북한 선박의 통항문제를 거론하긴 적절하지 않은 자리로 보인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