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북 공동 선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남북한간의 세 가지 구체적인 합의에 기초한다. 선언은 이산 가족의 만남이 언제 시작할 것인지를 명시했고, 선언의 다른 조항들을 수행하기 위한 남북 정부간 대화기구를 설정키로 했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 이번 선언이 주한미군이나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 핵무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기쁘게 생각한다.

이들 사안은 남북한 양국이 결론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논의에서 이 문제들을 강력하게 다루되 선언에는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이들 안보문제는 필연적으로 다뤄지기는 해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남북한간 만남(all Korean meeting)’인 이번 회담에서 최우선적인 의제는 아니다. 선언에서 이들 사안을 배제함으로써 장차 이해 관련국들에 최대한의 유연성을 제공한 것은 한반도 관련국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협의사안을 남북한이 확실이 결정내릴 수 있는 사안으로 좁힌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수용키로 한 배경에는 최소한 네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는 집권 6년째인 김 위원장의 강화된 권력기반이다. 이를 토대로 그는 자유롭게 북한을 떠나 중국을 방문할 수 있었고, 이번 회담에서도 막대한 자신감을 과시했다.

그로선 정상 회담에 대한 준비가 돼있었고, 이번에 이 권력기반을 충분히 활용하려 했다. 두 번째 요인은 북한이 이제 김 대통령을 자신이 가장 상대할 만한(available) 파트너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김 대통령이 북한의 와해를 꾀하거나 북한을 흡수하려 하지 않으리라는 점, 또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우려는 그의 욕구가 진지하다는 것을 이제야 인식했다. 북한은 또 지난 수년간 남북한 양국의 좋은 이웃이 돼 온 중국으로부터 매우 좋은 조언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북한은 이제 한국만이 자신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제원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중국이 식량을 지원할 수는 있어도 기술과 원조는 한국만이 주 제공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고, 이것이 북한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주요 목적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을 환대했고, 분위기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김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쏟은 노력과 김 위원장이 보인 정중한(gracious) 호스트로서의 모습은 모두 축하할 만한 일이다.

김 위원장이 남북한 양국간 화해를 이룰 수 있는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점이 지나치게 강조돼 앞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남은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주의와 경솔함(carelessness)’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한국에는 거의 ‘행복(euphoria)’에 가까운 분위기가 퍼져있다. 그러나 (남북 회담이 자아낸) 공개성과 솔직함 등에 너무 휩싸여서는 안 된다. 한국 내에 방영된 회담관련 TV 보도량의 얼마만큼이 북한 대중에게도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김 대통령이 가장 우선시하는 의제는 이산가족간 상봉이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남북한의 가족들이 만나는 구체적인 절차가 진행된다면 현재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은 남북한 화해과정에서 또다른 중요한 단계(step)가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양국의 군부대가 비무장지대에서 한발 물러나 후방으로 배치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이 진실로, 또 영구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북한에 대한 개입(engagement)정책을 주장해왔고, 지금 한국은 중국·러시아·일본·미국 등 인근국가들과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들 국가 모두의 지역적 지지를 배경으로 성사됐다. 따라서 북한이 남북한간의 화해에 진지하게 나설 의사만 있다면 그 길은 매우 깨끗하게 닦인 셈이다.

이제 미국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필수적인 일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계별로, 또 일련의 구체적인 정책이행을 통해 다른 의제로 옮겨가야 한다. 북한은 너무 오랫동안 미국의 경제제재 아래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제재해제를 주장해 왔고, 이제 클린턴 대통령도 조만간 그럴 의사를 밝힌 점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미국 기업인들은 북한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고, 북한의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의 경제가 호전된다면 북한이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외국에 미사일을 판매하는 데 의존할 이유가 줄어들게 된다.

/미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정리=이철민 뉴욕특파원 chulmin@chosun.com

도널드 그레그

▲윌리엄스대학 졸업

▲미 중앙정보부(CIA) 근무

▲전 주한 미대사

▲현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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