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매체들은 남한에 정착했던 유태준(33)씨의 귀환 소식을 지난 7일 처음 전한 데 이어 12일에는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해 그의 생존사실을 거듭 확인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씨는 평양의 신문과 통신, 방송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자회견 석상에서 탈북 과정과 남한에서의 생활상, 귀환 동기 등에 대해 자세하게 밝혔다.

북한은 월북자들이나 납북자가 있을 경우 1∼2개월만에 평양에서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 체제 우월성 등을 선전해 왔다.

울산광역시에 거주했던 신모(당시 43세)씨가 1999년 3월 월북했을 때에도 북한은 조선중앙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그의 월북 사실을 밝힌 후 같은달 말 평양에서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다.

결국 유씨의 경우 월북이나 납북 사실이 확인된 뒤 1∼2개월 만에 기자회견 자리에 나타났던 통상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실종된후 거의 1년만에 국제사회에 생존 사실을 밝힌 것이다.

평양방송에 따르면 북측의 한 기자는 유씨에게 북한으로 돌아오게 된 배경을 설명해 달라면서 '몇해 전 유태준 청년이 공화국의 품에 안기지 않았습니까'라고 지적, 올해 북한으로 넘어간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유씨의 기자회견을 뒤늦게 마련한 것은 남한에 와서 `대한민국' 국적까지 취득한 상황에서 그의 처형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남한과 미국의 일부 언론이 유씨의 처형 소문을 크게 다뤘는가 하면 `북한에서 공개처형된 유태준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연대'가 서울에서 결성됐고 그의 평양귀환 소식이 알려진 후에는 그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존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북한 내의 인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가 지난달 `2001년 연례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북한의 인권실태를 꼬집었는가 하면 13일부터 브뤼셀에서 북한과 유럽연합(EU) 간의 인권대화가 예정돼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실정에 북한측이 유씨의 기자회견을 마련했다는 것은 결국 유씨를 꼬투리로 한 북한의 인권 시비가 국제사회에 부각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생각이 내심 작용한 것으로도 보여지고 있다.

지난 95년 5월 `제86우성호'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측 해상에서 피랍된 후 남측이 적십자 통로나 쌀지원 남북 접촉에서 조속한 송환을 촉구하는 등 문제가 불거지자 4개월만인 같은해 9월 25일 기자회견을 마련, 사망자 신원 등을 뒤늦게 전하기도 했다.

북한은 또 남한 내 일부 신문들이 `유씨 공개처형설'을 부각시키는 등 북한 인권문제를 비화시키고 있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로 `상투적인 욕설'보다는 기자회견을 통해 정면 반박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유씨의 기자회견과 관련해 한 탈북자는 '북한 내부의 범죄자나 정치범 처벌에는 공개처형 방법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와 연계된 인물에 대해서는 함부로 처형하지 않고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인권문제에 있어 취약하고 국제사회에서 비난이 일 소지가 많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남한정착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 역시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유씨를 처벌하기 보다는 체제에 유리한 쪽으로 활용해 나가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 탈북자는 분석했다./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