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을 고치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를 고쳐 우리나라의 영토를 현실에 맞게 ‘휴전선 이남’으로 한정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 통일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듯이 성급하게 영토조항을 고치자고 나서는 것은 경거망동(경거망동)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6·15 공동선언문의 여러 문제점을 비판한 야당조차 영토조항 개헌문제를 들고나온다는 것은 자가당착(자가당착)이요, 정책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헌법의 영토조항이 갖는 규범적인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영토조항은 1948년 제헌 이래 지금까지 고쳐진 일이 없다. 그리고 남북 분단상황 때문에 한번도 현실적인 규범력을 가져본 일도 없다. 그러나 이 규정을 근거로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도 만들었고, 1997년에는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을 만들어 탈북주민들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해서 그들의 정착을 도와주고 있다. 우리 대법원도 헌법상 북한지역은 대한민국 영토인 만큼 북한공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판시하고 있고, 우리 헌법재판소도 북한은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인 동시에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는 입장에서 헌법재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영토조항을 고쳐 북한은 우리 영토에 속하지 않는다고 헌법에 명문화한다면 탈북주민은 더 이상 우리 국민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또 북한이 우리 영토라는 전제 아래 만든 우리의 많은 실정법은 헌법상의 근거를 잃게 된다.

헌법상의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이 상충한다는 주장이 학계 일부에서 제기돼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대북정책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추진되어 왔다. 1988년의 7·7선언과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가 그 단적인 증거이고, 이번의 6·15 공동선언문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왜 구태여 영토조항을 고쳐야 한다는 말인가.

영토조항이 남북관계와 통일의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은 지나친 형식논리이고 법실증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물론 지금은 ‘미수복(미수복)지역 논리’나 ‘유일합법정부론’ 등 구시대적인 냉전논리를 내세워 북한지역을 현실적으로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경직된 사고는 버려야 한다. 이 점은 ‘전체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선언하면서 ‘조국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혁명투쟁의 전통’을 강조하는 헌법을 가진 북한도 마찬가지다.

영토조항을 가지고도 북한의 통치자를 포옹하는 우리 대통령이나, 조국광복을 위한 혁명투쟁을 강조하는 헌법을 가지고도 우리 대통령을 정중히 맞이하는 북한의 지도자나, 이미 그들의 행태는 형식논리와 실정법을 뛰어넘은 부분이 많다.

영토조항을 고친다고 당장 통일이 되는 것도 아닐 터인데 우리 영토가 휴전선 이남이라고 못박아 북한을 법적인 외국으로 만드는 역사적 과오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북한이 또다시 표변했을 때 영토조항의 개정이 갖는 국제법적인 파급효과도 생각해야 한다.

제2차대전 후 동·서독이 갈라지면서 영토조항 대신 기본법의 효력규정을 통해 기본법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서독지역으로 한정한 독일 민족이 시종일관 ‘1민족 2국가론’에 바탕을 둔 통일정책으로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독일과 달리 처음부터 영토조항을 헌법적 결단으로 채택하고 영토조항을 근거로 통일정책을 추진해서 6·15선언까지 왔다. 그렇다면 영토조항이 통일정책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영토조항만으로 우리 헌법이 북한지역에 효력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영토조항 때문에 다가온 통일이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헌법은 통일정책의 지침이지 수단이 아니다.

/ 허 영 연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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