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통한문제연구소(www.NKchosun.com) 김미영기자입니다.

지난 3월 16일 조선일보 사회면에 "유태준 공개처형" 기사가 나간 지 근 석달만에 북한이 드디어 '유태준'씨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함흥석탄판매소 지도원 공화국 귀환"이라는 제목의 지난 7일자 조선중앙통신 보도 전문입니다.

"남조선 정보원의 모략과 얼림수에 속아 남조선에 끌려나갔던 전 함경남도 석탄관리국 함흥석탄판매소 지도원 유태준이 얼마전에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는 남조선에 가보니 사람 못 살 썩어빠진 사회였다고 하면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공화국의 품을 떠나서는 순간도 살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고심하던 끝에 겨우 3국으로 빠져나온 기회에 조국의 품에 다시 안겼다고 밝혔다.(끝)"

평양방송에서 조선중앙통신(KCNA:북한 유일의 대외용통신)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보도해 지난 7일 우리쪽으로도 소식이 전달됐습니다. 이 소식은 제가 썼던 기사가 '오보'였음을 넌지시 알리고 있는 내용이라 기자로서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전문을 읽어보기도 전에 한 대학생이라고 밝힌 사람으로부터 이런 이메일이 와 있더군요.

"이제 당신이 자행한 반통일적 기사왜곡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탈북자 유태준씨는 살아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 당신이 지난 3월부터 쓴 유태준씨에 관한 내용의 핵심은 '피랍'이 아니라 '공개처형'이었고, 그 결과는 이북을 '닥치는 대로 사람 죽이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

이제 저는 기자로서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유태준은 처형된 것이 확실하다"를 입증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저 역시 제 기사가 오보고, 그의 생존이 사실이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자는 인권운동가와 다르고,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있다는 데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유태준씨는 정말 북한에 살아있는 것일까요?

유태준씨는 작년 6월 9일 중국에 들어갔고, 8월 이전에 북한에 있었음은 우리 정부도 인정했던 사실입니다. '밀입북'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만. 드디어 북한도 유태준씨가 적어도 과정이야 어쨌든 북한에 들어간 것 만큼은 이번에 확인해 주었습니다. 국정원 공보실은 제게 "유태준은 중국에서 행방불명됐다"까지만 사실이라고 했으니 "북한에 귀환했음"을 새롭게 확인한 것이지요.

그런데 언제 들어갔는지 정확한 언급이 없군요. '얼마전에' 들어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1년전'을 이렇게 표현한 것인지 '최근에' 들어왔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번 귀환 보도는 주로 대남용(對南用)으로 활용되는 대외용 매체를 통해 나왔을 뿐 조선중앙TV나 노동신문 등 대내용 매체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했다가 북한으로 귀환해 함북 온성의 주민편의봉사위원회 부지배인으로 영전한 것으로 확인된 탈북자 남수에 대해서는 대외용 보도는 없었고, 오히려 대내용 선전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것과 퍽 대조적입니다.

최근 미국에도 교민들 중심으로 '유태준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해 활동중이고, 유태준씨에 관해서는 뉴욕타임스, 타임, NHK, 산케이 등의 외신에서도 보도됐습니다. '인권문제'를 외교적인 카드로 강력히 내세워온 프랑스의 지식인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해 지난 주 피에르 리굴로 사회사평론 편집장이 프랑스 TV에 방영키 위해 장시간 유씨의 어머니 안정숙씨와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이제와서 유태준 귀환 보도를 낸 것은 이런 흐름이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그가 살아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94년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가 "납북된 고상문씨가 승호리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는 발표를 내고 나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들썩이자 북한은 그를 TV에 내보냈습니다.

TV에 나온 고상문씨는 "나는 의거입북했고, 재혼해서 평양에 살고 있으며, 지리학 연구사로 일하고 있다"고 고래고함을 지르듯 말했습니다. 그 일로 충격을 받은 한국의 아내는 96년 결국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는 비극을 낳기도 했지요.

유태준씨에 관한 보도는 국제사면위원회가 아닌 북한이 '반공매문집단'이라고 공공연히 비난해온 조선일보 지면으로 나갔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이 간단하게 '귀환'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조선일보 기사가 잘못된 것이라면 또 한바탕 조선일보 비난에 열을 올릴 법도 하건만 이번엔 조용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인지 죽었다는 것인지도 잘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공화국의 품에 안겼다'는 말 한마디로 그의 생존을 기정사실화하고 북한 보도의 전후 맥락, 그러니까 그가 한국 정보원에게 속아서 탈북했고, 한국사회에 회의해 다시 입북한 것까지도 슬쩍 인정해 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유태준씨는 동생과 함께 탈북해 중국에서 밀항해 부산으로 들어온 탈북자로 우리 정보원에 속아 들어왔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입니다. 가족들이나 우리 정보 당국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그가 한국사회에 회의해 아들을 버리고 스스로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믿을 만한 근거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중앙통신 보도중에서 '석탄판매소 지도원'이라는 그의 옛 직함을 빼고는 사실이라고 확증할 만한 어떤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가 피랍돼 공개처형된 것이 확실한데도 북한 보도 몇 줄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게 된다면 그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려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명예까지 빼앗아 그를 두 번 죽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북한은 이제 그의 얼굴을 보여주고 나아가 그가 살아있음을 입증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가 살아있다면 이미 그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국민이고, 그의 호적에 등재된 아들이 여기 살고 있는 이상 우리 정부는 진상규명단을 구성하여 그와 직접 대면해 자유로운 상태에서 피랍여부를 확인하고 송환해야 합니다.

기자로서 그의 얼굴을 보기 전에는 제 '처형 보도'의 진실성을 양보할 의사가 없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이제 북한은 그의 생존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차례입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 몇 줄 내놓고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린다면 사실상 북한이 그의 처형을 '확인'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김미영 드림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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