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과 이후의 한반도를 보는 뉴욕 월가의 시각은, 회담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전개될 상황은 일단 지켜 보자는 것이다. 또 회담이 빚어낸 지역 안정 분위기가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에 궁극적으론 도움이 되겠지만, 회담의 구체적인 결과를 기대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거라는 것이다. 한 한국 전문가는 역대의 남북한 합의가 실망적인 결론으로 끝난 점을 들어 “한번 속으면 다음엔 조심하게 된다(Once bitten, twice shy)”고 말했다.

지난 15일 미 메릴린치사가 배포한 ‘정상 회담과 그 영향’이라는 분석 자료. “우리는 한국의 국가 위험도(country risk)는 남북한간 긴장 완화로 인해 내려가겠으나, 경제 협력의 직접적인 혜택이 실현되기에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 “한국 주식 시장은 초기에는 (회담 성공) 뉴스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나, 곧 현실감이 들어설 것” “시장은 왜곡된 자금 흐름과 병든 투자신탁회사들과 같은 국내적 요인에 의해 더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 경제·시장 분석기관인 아이디어글로벌닷컴(ideaglobal.com)사의 아시아 시장 분석가인 마이클 커츠는 “회담 결과는 군사 대결의 가능성 감소와 향후 한국 군사비 감소 추세 기대 등 2가지 면에서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91년에도 북한의 연형묵 총리와 한국 정부간에 서명된 합의가 결코 이행된 적이 없지 않느냐”며, “분명한 후속 조치가 있기 전에는 이 긍정적인 요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망설여지는 게 월가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지역 안정으로 인해 한국 물(물)에 대한 ‘전쟁 프리미엄’이 감소된다면, 통일 비용은 ‘막대한 부담’이라고 말한다. 메릴린치사의 신흥시장 채권 리서치 부문 책임자인 털리오 베라는 아예 “국가 신용도에서 보면, 한반도 통일의 단기적 영향은 확연히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일 비용은 작년도 한국 국내총생산(GDP) 4020억달러의 수배에 이를 것이지만, 현재 한국 내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정부로부터 250억달러의 추가 자금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물론 남북한 통일이 임박했다는 견해는 거의 없지만, 도이체 방크의 신흥시장 채권·외환 수석 전략가인 페터 페타스씨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수주 전까지도 서독 정부는 통일까지 최소 10년의 전환기가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고 말한다.

무디스사의 국가 신용(sovereign risk)등급 부문 선임 분석가 스티븐 헤스는 “투자가들의 ‘코리안 리스크’ 인식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한국 기업들이 북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으나, 동시에 통일로 향한 움직임이 수반할 사회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디스사는 지난 4월 중순 “한국의 현 국가 신용등급(Baa2)은 회담의 결과보다는, 한국의 경제 정책과 전망에 의해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신용등급 부문 이사인 다카히라 오가와(싱가포르 소재)도 “시기상조”라는 의견이었다. 그는 앞서 ‘부정적 영향’을 확언한 메릴 린치사 베라의 의견에 대해 “이미 외채가 많은 상황에서 또 다른 재원 조달이 부담이 될 것이라는 시장 참여자의 견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서로 다른 전제에 따라 통일 비용 계산도 다양하고 투자 기간에 따라 부담도 달라져 아직은 모든 것이 의문점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북한 특수(특수)’ 가능성과 관련, 정상회담 개최 직전에 발표된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견해는 “이미 북한 진출도가 높은 현대와 같은 재벌에는 축복”이라는 것. 메릴린치사의 보고서는 그러나 “재벌이 낮은 이익에도 불구하고 공익성 투자를 하리라는 기대는 근거 없다” “경제 협력의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또 19일 발간된 경제 주간지 ‘배런스’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에 130여 기업체 간부들이 동행했지만, 지금까지 북한진출 한국기업 135곳 중 이익을 낸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한 경제 제재 완화로 인해 미 기업들이 일시에 북한으로 몰려갈 가능성도 북한 내 사회기반 시설의 미비-기본적인 금융제도의 결핍·정치적 불안정성을 들어 매우 부정적으로 봤다.

/뉴욕=이철민기자 chul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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