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4일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대남 적화(적화)통일을 의미하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명시한 북한 노동당 규약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5면

김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19일 저녁 언론사 사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임동원(임동원) 국가정보원장으로 하여금 이 내용을 설명토록 했고, 임 원장은 향후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비(비)보도’를 요구했다.

임 원장은 “김 위원장이 김 대통령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한 데 대해 김 대통령은 ‘북한에도 노동당 규약이 있고,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한다는 구절이 있으며, 북한 형법에는 우리보다 더 심한 것도 있다’며 ‘이런 것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고, 김 위원장도 공감하고 이해했다”고 소개했다.

북한 노동당 규약은 전문에서 ‘당면 목적은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건설에 있다’고 명시, 한반도 전체의 공산통일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또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 임 원장은 “김 대통령이 ‘주한미군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유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김 위원장을 설득했으며, 김 위원장은 ‘꼭 같은 생각’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임 원장은 언론사 사장들에게 이같은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몇차례에 걸쳐 거듭 ‘비보도’를 요청했다.

김 대통령은 17일 한나라당 이회창(이회창) 총재와의 여야 영수회담에서도 대외적으로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하며 이같은 내용을 설명했다.

북한이 노동당 규약의 ‘온 사회의 공산주의 사회 건설’ 조항을 수정 또는 폐지한다면 적어도 명문상으로는 대남 적화 통일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의 공존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일보는, 향후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고 안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노선의 포기를 뜻하는 노동당 규약의 개정이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까지 우리 정부가 효율적으로 대북 협상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큰 차원의 국가적·민족적 이익을 위해서는, 정부가 설명하고 비보도를 요청한 이 같은 내용이 사전에 공개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 이를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사 사장단 만찬이 있은 다음날(20일) 아침 중앙일보에는 이 같은 요지의 내용이 크게 보도됐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20일 중앙일보 기자의 청와대 출입을 중지시켰고, 박준영(박준영) 대변인은 “언론보도로 문제가 파생되고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민족에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에 부득이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됨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20일 석간과 21일 조간신문들에도 같은 내용이 보도됐다.

한편 중앙일보 보도가 있자 한나라당 권철현(권철현) 대변인은 20일 오전 “청와대 측 당부로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더 이상 보안을 지킬 이유가 없어졌다”며, 이 총재도 그 같은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 박 대변인은 “야당이 영수회담 발언을 일방적으로 발표,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김민배기자 baibai@chosun.com

/김창균기자 ck-kim@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