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스웨덴, 유럽연합(EU)이 인권세미나와 대화를 갖는 것은 무엇보다 북한이 외부세계와 인권문제 논의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북한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스탈린식 전체주의 공산국가로 그동안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지적이 국제사회에서 수차례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내부에 인권침해 사례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유럽,미국,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등 외부세계의 인권개선 요구 및 대화 제의를 일축해왔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국제사회가 최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보편가치로 삼고 있는 유럽연합(EU)은 지난 98년 북한과 처음 정치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북한에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인권문제 해결을 요구해왔다.

북한이 유럽의 인권개선 요구를 일축해오다 인권에 대한 대화용의를 표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북-EU 정치대화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인권에 대해 EU와 논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으며 이는 지난달초 요란 페르손 스페인총리등 EU 고위대표단의 방북시 북-EU 인권대화 합의로 이어졌다.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 말기 조지 W. 부시 신임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예고되면서 북한은 잇따라 유럽 국가들과 수교하는 등 유럽과 관계개선에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유럽의 인권대화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이 인권에 대해 유럽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데 지나지 않을 뿐 북한이 내부의 인권침해나 탄압을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스웨덴과 EU는 이번 대화에서 북한이 자체 인권상황을 바라보는 서방의 시각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앞으로 유럽과 대화를 계속하며 인권개선 의지를 보일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서방과의 첫 대화에서 자체 인권 수준을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표명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측 역시 첫 만남에서 북한으로부터 인권개선 약속을 받아낼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고 있으며 장기적인 대화를 통해 북한 인권개선을 유도해낸다는 방침이다.

EU 외교소식통들은 이에 대해 '이번 대화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북한이 인권 논의를 시작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영향력 강화 차원에서 한반도문제 해결에 적극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유럽은 앞으로 대북 원조, 관계개선 과정에서 북한에 인권개선을 꾸준히 요구하고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조와 관계개선을 지렛대로 북한의 인권개선을 도모하겠다는 것. 이같은 EU의 대북 인권개선 요구는 15개 회원국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북한 인권개선은 회원국들이 EU의 대북 관계개선 전제사항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EU 역시 북한이 인권대화를 극히 꺼리고 있으며 강압적인 인권개선 요구가 북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 이제 막 수교단계에 이른 양자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때문에 EU는 이번 인권세미나 및 대화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를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EU는 대북 인권대화를 지속시키기 위해 중국과의 인권대화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인권개선요구를 부당한 내정간섭으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과 그동안 수차례 인권대화를 열어 인권개념에 대한 서로의 시각을 교환하고 형사, 사법제도를 상호 비교하는 등 인권 분야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EU는 그같은 대화가 중국 인권개선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북-EU 인권대화는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의 대북 대화 의제에서 빠져있는 등 대화의 '사각지대'에 속한다는 점에서 또한 의미가 깊다.

대북 관계개선을 무엇보다 우선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북한이 껄끄러워하고 있는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으며 미국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어 이를 쟁점화하지 않았다.

EU로서는 북한 인권문제가 자신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몇안되면서도 적절한 분야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는 한국이나 미국이 거론하기 어려운 또다른 성격의 민감사안인데다 이에 대한 개입은 인권을 중시해온 EU의 전통과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외교전문가들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EU가 개입하기 시작함으로써 남북긴장완화는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해결은 미국이, 인권개선은 EU가 주도하는 절묘한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브뤼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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