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김창기 정치부장

남북정상회담은 남·북한 간 반세기 동안의 반목(반목)과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공존의 시대를 여는 전기(전기)를 마련한 동시에 우리 내부에 여러 문제도 던지고 있다. 회담의 실무주역이었던 박재규(박재규) 통일부 장관을 김창기(김창기) 정치부장이 17일 만나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해 인터뷰했다. 다음은 문답 요지.

―회담 이후 우리 사회가 상당한 혼란에 빠진 느낌이다. 일부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미소 뒤에 뭐가 있는지도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55년 동안 가져온 북한체제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곧 바뀌긴 힘들 것이다. 우리도 쇼크가 있지만, 북한에서도 ‘김대중 쇼크’가 있을 것이다. 북쪽이야 충격이 곧 가라앉겠지만 자유사회인 우리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

―김정일 위원장은 80년대, 90년대에도 대남 사업을 지휘했는데, 그런 이미지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봐야 하나?

“그러한 측면이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하나만 알았다면 이번에는 넷을 더 파악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에 대한 이해는 북한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 위에서 남북협력도 성공할 수 있다. ”

―회담 결과는 기대에 비해 어떠했나?

“기대 이상이다. 북쪽 특성을 잘 아니까 처음에 큰 기대는 갖지 못했다. 만남 자체가 중요하고, 다음 회담에 합의하면 최대 성과, 공동성명이라도 나오면 금상첨화(금상첨화)라는 생각으로 떠났었다. ”

―어느 부분이 가장 큰 성과인가?

“양쪽 정상이 국호 아래 직접 서명한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각료급에서 서명했다면 가치가 1000분의 1밖에 안 되며, 북쪽 체제의 성격상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1970년 브란트 총리와 슈토프 총리 간의 첫 동·서독 정상회담에선 다음 회담 날짜만 잡고 헤어졌었다. 김 위원장은 ‘예술적으로 해보자’고 했다. 합의사항을 잘 실천해 나가자는 뜻이다. ”

―공동선언의 1항인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2항에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방안 논의’는 사전에 어느 정도 예측했나?

“저 쪽에서 제기할 경우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워서 갔다. 북 측이 터무니 없이 주장했다면 안 됐겠지만 양 측이 어느 정도 접점을 이뤘으니까 공동선언에 담았다.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

―1항의 ‘자주’를 내세워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가?

“1항의 ‘자주’와 주한미군은 무관하다. 김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이고, 주한미군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유지에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또 ‘자주’는 외세 배격이 아니라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되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를 얻는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과 우리의 ‘남북연합’은 어디까지 같고, 무엇이 다른가?

“모두 2체제 2정부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선 유사하나, ‘연합’은 중앙정부가 없고 체제결속 정도도 ‘연방’보다 약하다.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은 중앙정부가 독자적 권한이 없는 상징적 기구라는 점에서 ‘정상회의’ ‘각료회의’ 등 상설적 남북 간 협의체를 상정하고 있는 우리의 ‘남북연합’ 형태에 사실상 접근해 있다고 본다. 통일논의는 시급한 것이 아니다. 쉬운 것부터 하고, 정치적인 것들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10년이 걸릴지, 그 이상이 될지 모른다. ”

―이산가족 문제는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등에 관한 원칙적 합의를 기대했는데 1회성 합의에 그쳐 미흡하다. 100명이라는 숫자도 적다.

“이제 시작이다. ‘8·15 방문단 교환’은 시범 사업이다. 2차, 3차로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면회소 설치 등도 북 측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이산가족 문제는 참 복잡하다. 남한의 이산가족들이 소극적인 경우도 있다. 최근 북쪽 이산가족이 남쪽 가족들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다섯이면 두 가족 정도는 접촉을 주저한다고 한다. ”

―국군 포로에 대한 언급은 왜 없나?

“국군 포로는 법적으로는 없다. 우리 측 통계상 미귀환 국군이 4만여명이라고 하나 대부분 전쟁 당시 총각들로, 그동안 북한에서 결혼하고 아들·손자까지 얻어 살고 있다. 지금은 포로가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이산가족이다. 김 대통령은 이 문제도 거론했다.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나 국군포로 등도 이산가족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

―당국 간 대화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경제·체육·보건 등 여러 분야별 회담도 필요하고, 그것들을 총괄할 장관급 회담도 필요하다. 어느 것을 먼저 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총괄할 채널로는 가령 과거의 ‘남북조절위원회’ 모델도 검토할 수 있다. ”

―경의선(경의선) 복원이 맨 먼저 거론되는데, 계획을 갖고 있나?

“경의선이 끊어진 부분이 20여km로 가장 짧다. 우리 쪽이 12km, 북쪽이 8km 정도 된다. 우리 쪽은 공사비가 1km당 50억원 정도 들 것이라 한다. 우리가 다 해준다고 해도 1000억원 정도다. 2년쯤 걸린다면 1년에 500억원이다. 비료 20만t 지원에 640억원 들어갔는데 많은 비용은 아니다. 그러나 실무회담에서 심도있게 논의하면서 야당과도 협의할 것이다. ”

―6·25를 비롯하여 테러 사건 등 북한이 과거 우리에게 했던 문제들에 대해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북한을 돕는 데 대한 국민 지지도 커질 것 같다. 소수지만 테러 희생자 가족들 입장도 있는 것 아닌가?

“김 대통령도 이번에 포괄적으로 짚을 것은 다 짚었다. ‘6·25전쟁’이란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동족이 싸우는 일이 다시 없어야 한다’고 했으면 거기에 포함되는 것 아닌가? 김 위원장도 (6·25에 대해) ‘미안하다’는 직접 표시는 안했지만, 후계자로서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남쪽 지도자를 초청해 ‘전쟁이 다시는 없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손잡고 도움이 되는 쪽으로 나가자는 회담이다. 이런 부분을 너무 따지면 잘 될 것이 없다. 냉전식 사고로는 도움이 안 된다. 국민 100%가 다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60~70%가 이런 방향으로 가자고 하면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언제쯤 이루어지나?

“회담 후속 조치가 잘 이뤄지고 남한 내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 /정리=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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