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평양….

13일 오전 10시30분 아시아나 항공 특별기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서, 15일 오후 4시30분 대한항공 특별기로 서울에 귀환할 때까지 취재기자로서 느낀 평양 사람들의 분위기였다. 변화하는 평양의 모습은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부터 안내원, 숙소인 고려호텔 근무자들, 평양시민들이 모두 몸으로,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현장의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지도급

‘은둔의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은 시종 파격적 접근으로 대표단과 전세계는 물론, 평양시민들조차 놀라게 했다. 이른바 자신의 상표인 ‘광폭(광폭) 정치’를 보여준 것이다.

14일 김 대통령이 목란관에서 베푼 만찬에서 김 위원장은 1번 테이블에 앉아있던 현역 인민군 ‘최고간부’들을 모두 불러 “김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술을 따르라”고 했다. 스스로도 포도주를 10여잔이나 마시면서 ‘원샷’을 했다. “남기면 북남합의가 잘못될까봐”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고도 했다.

◆‘남한정치 정세’에 관심

이번 대표단을 맡은 ‘안내원’들은 각 분야의 ‘최고 베테랑’들만을 뽑아 배치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남한 및 국제정세에 밝았다. 80년대와 90년대 초의 남북접촉 때 서울에 다녀간 ‘은퇴한 기자’들도 있었다.

한 안내원은 “지난 총선(4·13)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당이 이길 줄 알았는데…”라면서, “남측의 지역주의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안내원은 “우리는 김 대통령을 2년 동안 지켜봐왔다”면서, “(김 대통령은) 북·남 관계개선과 교류·협력에 가장 적극적이고, 우리(북)를 잘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지도자”라고 평했다.

이들은 ‘전쟁’에 민감했다. 한 안내원은 “전쟁 나면 남이든 북이든 다 망한다. 외세만 좋은 일 시킨다”고 했다.

◆순박한 사람들…그러나 차이도 여전

북한 사람들은 방북 대표단을 ‘최상’으로 대접했다. 협상 당사자인 김 대통령에게뿐만 아니라 180명 수행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기자들에게 제공된 방도 ‘디럭스 룸’이었다.

평양시내 곳곳에서 ‘손님맞이 치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김 대통령과 대표단 일부가 묵었던 백화원 영빈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옥류관, 만수대 의사당 등 대표단이 방문하거나 묵는 곳의 경내 아스팔트는 이제 막 완성한 듯 ‘진한 콜타르 냄새’가 났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조선은 하나다’ ‘위대한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 ‘전격전 속도전 섬멸전’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식대로 산다’ 등 오후 8시만 되면 어두워지는 평양의 밤거리를 밝게 비추는 네온사인 구호 행렬 등도 한민족이면서 우리와 다른 체제가 그곳에 존재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미제(미제)’나 ‘남조선(남조선)’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구호를 볼 수 없었던 것도 ‘의미있는’ 변화 중 하나였다.

◆조선일보와 KBS 기자 입북의 곡절

이번 남북 정상회담 공동취재단에는 조선일보 기자도 포함됐고, 평양에서 정상적으로 취재활동을 했다. 그러나 평양으로 가기 전까지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회담에 앞서 진행된 남북 양측의 실무접촉 과정에서부터 북측은 조선일보와 KBS가 과거 그들에게 비판적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두 언론사 기자들이 방북 취재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것은 ‘사과와 배상’을 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보고받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고, 내가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살아왔는데, 정도(정도)대로 처리하라”고 우리 정부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 관계자들이 이 같은 입장을 북측에 전했으나, 북측은 원래의 요구를 끝까지 고수했다.

김 대통령은 방북 전날인 12일 밤 11시30분쯤 임동원(림동원) 국정원장과 박재규(박재규) 통일부 장관을 전화로 찾아 거듭 강하게 지시했다. 임 원장은 13일 새벽 북측 고위 인사에게 다시 전문(전문)을 보내 김 대통령의 확고한 뜻을 전했다. 우리측은 특히,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서 언론자유를 중시하며, 남북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서울에 600여명의 외신기자들까지 집결해 있는 마당에 북측이 두 언론사 기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국제여론이 회담에 얼마나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인가를 지적했다.

결국 순안공항에 도착한 조선일보와 KBS 기자들은 북측으로부터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다른 공동취재단 구성원들과 함께 검색과 신분조회를 통과했다. /ba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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