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이 어제(13일)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할 때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영접하고 승용차에 동승하는 등의 모습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한은 과거 공산권 등 외국 국가원수의 방북시 김일성(김일성)이 직접 공항에 나와 서로 포옹하면서 영접하는 적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남북관계의 현실로 보아 김 대통령의 도착시 그와 같은 영접을 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단후 27년만에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 제1차 본회담이 1972년 8월 29일 평양에서 열려 남측대표단 일행 54명이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갔을 때 평양 주민들이 가두에 나와 붉은 조화(조화)를 들고 남측 일행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것을 TV를 통해본 우리 국민들은 통일의 길이 곧 열릴 것이라는 감격과 흥분에 싸였었다. 그러나 그 회담은 알맹이 없이 의례적 행사로 끝나고 제2차 회담부터 북한은 ‘반공태세 철폐’ 등 정치 문제를 거론하였다.

1990년 남북 고위급회담 관계로 남측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북한주민들의 뜨거운 영접은 우리를 감동케 하였다. 그러나 공식회담에서는 쌍방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으로 변모되었었다.

그동안 적십자회담, 고위급회담 등 서울·평양 왕래 회담서 북한이 보인 태도의 특징은 ‘영접은 뜨겁게, 회담은 차갑게’라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영접시 그들은 동포애적 입장을, 회담시에는 원칙적 입장을 강조하는 양면적 태도를 보였다.

이번 정상회담은 과거 회담과 비교할 때, 그 수준, 의미, 배경, 여건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잣대를 갖고 평가하기에는 적합지 않으나 북한 협상태도의 일관성 측면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할 수 있다.

북한은 남북대화의 목적을 ①대내외 선전 ②상대방의 의도 탐색 ③협상을 통한 합의 등 세가지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번 정상회담도 이 기조 위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항 영접은 일단 대내외 선전을 겨냥한 인상이 든다. 세계의 매스컴이 보는 앞에서 김 대통령을 정중히 영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부정적으로 비치었던 자기의 이미지를 일거에 개선하고 북측이 남북간의 화해를 바라고 있다는 상징 조작을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이것은 지난 5월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시 중국 정부가 ‘김정일은 건강하며, 중국의 개방·개혁을 평가한 훌륭한 지도자’라고 발표한 것과 무관치 않다.

또한 그가 김 대통령과 같은 승용차를 타고 백화원 영빈관까지 동행한 것은 상대방 의도탐색에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서울, 평양왕래 회담시 초청측 대표와 방문측 대표가 같은 승용차에 동승하여 환담과 덕담을 나누어 온 것은 하나의 관행이었으며, 그 기회를 이용하여 회담 및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상대측 의중을 자연스럽게 타진한 다음, 그것을 본회담 전략 수립에 참고하였다. 이로 미루어 두 정상이 숙소까지 가는 승용차 안에서 나눈 환담과 대화 속에는 상호 탐색적 요소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협상을 통한 합의 가능성 여부에 앞서, 회담은 일단 부드럽고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한의 정책 목표는 다르지만, 남측은 평화공존, 북측은 연공연북(련공련북) 경협 등 서로 이익이 일치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부분적 합의의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경협, 이산가족 문제의 부분적 해결, 남북 철도 연결, 당국간 대화의 정례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로 보아 한반도 문제의 근본문제인 평화정책 부문에 관해서는 의견접근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이와 같은 전망을 토대로 우리는 영접, 행사와 같은 수면(수면) 위와 회담의 본질 문제인 수면 밑을 함께 보는 냉철한 균형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송 영 대 전 통일부차관·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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