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뒤집는 사건이 워낙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러시아의 한국 전문가들은 이제 웬만한 사건에 잘 놀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뉴스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20여년 동안 북한 지도부는 한반도의 ‘냉전’ 상황을 종식시키려는 서울의 노력을 일관되게 무시해왔다.

평양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을 “조선에서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정치 협잡”이라고 비난해 왔다. 또 작년 여름 북한 군함의 침몰로 끝난 서해 교전은 아직 한반도에서 ‘냉전 종식’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이 남쪽과의 정상회담에 동의하고 나섰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동의한 것은 평양의 서울에 대한 새로운 정치 노선의 시작을 의미하는 징조인가, 아니면 기존 노선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전술구사에 불과한 것인가? 불행하게도 이번 평양의 대화 동의가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의 산물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북한 언론은 지금도 서울의 이른바 ‘반(반)민중적 정책’에 대한 비난공세를 퍼붓고 있다. “남한은 미국의 꼭두각시이며, 따라서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원칙적 입장’ 고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나온 정보를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평양의 대화 동의는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의 산물이 아니다. 둘째, 평양의 정책 변화는 남북 간의 건설적 협력 경험이 쌓인 다음에나 가능하다. 셋째, 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가져다 줄 직접 결과물은 매우 소박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이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를 희석하는 것은 아니다. 양쪽 정상이 만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을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현재 북한에 통일은 당면과제가 아니다. 통일은 공허한 구호로 변질된 지 오래다. 지금 북한에 절박한 문제는 통일이 아니라, ‘안전보장’과 ‘생존’이다. 북한은 남한에 흡수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흡수통일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경(정경)분리 원칙하에 대북 관계 구축에 나섰다.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 정책이라기보다 ‘공존 원칙’에 가까운 ‘햇볕 정책’을 제기한 것이다.

물론 평양이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북한이 한국과의 정치·경제 접촉에 어느정도 긍정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정일을 정상회담에 나서게 만든 것은 결코 통일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남한과의 접촉에 따른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없다. 우리는 김정일은 다음과 같은 절박한 현실에 의해 정상회담에 나서게 됐다고 믿는다. 우선, 북한의 경제난은 가장 비관적 평가보다 더 어렵다. 장기적 경제 위기는 북한의 방위력과 안보 능력을 현저히 저하시켰다. 이 위기 상황은 북한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위기가 지속되면 북한 지도부의 권위가 붕괴될 수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정상회담이 가져올 결과와 남북관계 발전 전망을 이렇게 간추릴 수 있다. 우선, 정치보다는 경협부문에서 보다 구체적 진척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결국 개방화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 유지에 자신이 없어 개방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등 주변국들이 북한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에 확신시킬 경우에만 북한은 진정한 대화의 길로 나설 수 있다.

남북 상호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양측 정부·의회 지도자 간의 광범위하고 정기적이며 긴밀한 접촉이 필요하다. 외무장관, 국방장관, 문화장관 사이에 정기회담 등이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본다. 보다 어려운 문제는 군축이다. 양측 모두 군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체적 합의에 도달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충고는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흡수통일이 아닌 대화를 원한다면 평양이 경제난을 극복하고 미국 및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이룩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북한이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황성준기자 sjhwang@chosun.com

◈바딤 트카첸코

1932년 우크라이나 출생

1955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MGIMO) 졸업(한국학 전공)

1955~57년 국제경제계획위원회(고스플란) 근무

1957~62년 북한 주재 소련대사관 근무

1962~91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국 근무(한반도 담당)

1991~현재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한국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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